요즈음은 참 글 끄적이기가 어렵습니다.
십 수년 전 쓰던 필명 산하를 다시 끄집어내서 인터넷에서 논 지 몇 년 동안 요즘처럼 입 닫고 손 오므리고 지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본디 과묵함과는 아마존 강과 고비 사막만큼 머나먼 거리를 두고 사는 저로서는 참 오랜만의 침묵이었다 싶군요.
하고 있는 일이 세상의 아름다움보다는 구역질날 정도로 끔찍한 구석을 들추고 다니는 편이기에 차마 그 일을 떠벌일 엄두가 나지 않는 탓도 있고 대체 이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묵묵부답 유구무언의 자세를 견지할 수 밖에 없는 너무나 무력해서 두려운 상황과 허다하게 마주치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 지역의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연인즉슨 모 산골 마을에 이상한 가족이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주목하게 된 이유는 부모가 아이 셋을 몽땅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으며, 그 주거 환경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열악하다는, 즉 아동학대의 한 형태인 '방임'이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그 집을 다녀 온 센터 팀장의 말은 또 한 번 상상의 장벽을 더듬을 만큼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을 UN 가족이라고 믿고 있구요.
UN 할아버지가 자기들을 팔라우라는 섬나라에 데려가기로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엄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의 손녀딸이라고 주장하면서 친일파들이 있는 학교에는 못보낸다고 하구요."
동네에서 폭력적인 인물로 유명했던 아버지가 이웃 주민의 차를 박살내고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장을 이유 없이 두들겨 팬 죄로 교도소에 간 뒤 비닐하우스에는 어머니와 세 딸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찾아오는 게 제일 싫어요!"라면서 외부인을 경계하는 막내딸을 얼르고 달래고 아양을 1시간 남짓 떤 뒤에야 우리는 개 오줌이 질퍽질퍽 묻어나는 카펫이 깔린 집 안(?)에서 그들과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 유엔은 뭐고 임시정부는 어디서 온 뚱딴지란 말인가.
세 딸의 어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자신을 억압하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주위의 친일파들이 임시정부 주석 이동녕 선생의 손녀딸인 너무나 못살게 군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남편이 잡혀간 것도 '고정간첩'으로 몰았다가 안되니까 폭력범으로 엮었다고 했고 해당 지역 군수와 아이가 다니는 학교 교장 등 모두가 친일파의 후예들로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눈엣가시로 보고 죽이려 든다고 눈물로 호소하더군요.
동네 사람들 말에 따르면 기이한 사람들을 찾는 어떤 프로그램에서 이 집을 취재 왔다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서 되레 감동 받고 돌아갔다는데, 저 역시 그 열변에 휘둘리지 않았을까 적이 겁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낡아빠진 비닐 하우스 앞에서 펄럭이는 깨끗한 태극기 앞에서 정말 버림받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피해의식에 젖어 더러운(?) 세상을 피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니까요.
그럼 UN은 또 뭘까.
물어 봤더니 아버지가 6.25 때 참전해서 UN군을 훈련시킨 교관이었으며 그래서 16개 참전국의 UN군과 모두 인연을 맺었고, 지금도 백발이 된 UN군들이 아버지의 딸인 자기를 찾아 이 비닐 하우스를 방문한다는 겁니다.
그들 역시 독립군의 후손이자 'UN 가족'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우에 분노하고 있고 팔라우라는 따뜻한 섬나라에 데려가 주마고 약속을 했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여권을 내주지 않아 못 가고 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그녀의 청산유수같은 웅변과 순결해 보였던 분노는 모조리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녀와 연락을 끊고 사는 친정 식구들에게 임시 정부 주석과 UN 가족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면서 입을 벌렸으니까요.
이동녕 선생과의 공통점은 연안 이씨라는 것 뿐이었고, 아버지가 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건 맞지만 나이 19살의 벼락치기 소위였을 뿐 UN군을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는 제게서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지요.
"걔가 완전히 이상해지긴 이상해졌구만."
그녀는 이미 굳건한 망상의 세계에 접어든 지 오래였던 겁니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계기를 통해 그녀의 내면에 자리잡게 된 착각과 오해가 망상으로 굳어졌고, 그 망상은 그녀의 내면에서 한 치의 흔들림없는 '진실'로 둔갑해 있었던 겁니다.
세상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의 피해망상에 신경을 쓸 것이 무엇이냐 애써 태연해 봤습니다.
UN군 중에 독일군이 왔었느니, UN 할아버지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냐고 했더니 UN할아버지들이 싸웠던 지역의 사투리를 쓴다는 답이 돌아왔을 때는 밖으로 나와서 배를 쥐고 웃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초롱초롱 자라나는 그 아이들을 보자면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들 역시 똑같은 피해의식을 엄마로부터 주입받고 있었고, 피해의식을 넘어서 '바깥 세상'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무럭무럭 키워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일 권한이 있나요?
미운 사람들 다 죽여 버리게....."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열 살 어린 아이의 까만 눈은 상어의 그것처럼 무서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세상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딸들에게 함께 죽어 버리자며 극약 병을 내밀기도 했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제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지요.
의사를 두 명씩이나 모셔서 이들을 진단시킨 결과 병명은 ‘공유 정신병’이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정신병이 아이들에게 ‘옮아’ 가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정신병도 옮습니까?” 라고 희한한 낯빛으로 묻는 제게 의사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해 주시더군요. “세균, 바이러스에 의해서 옮겨지는 게 아니라 관계를 통해 옮는 겁니다.
고립된 상황에서 이니셔티브를 쥔, 그러니까 어머니이거나 언니이거나 등등 우위에 있는 사람 의 망상이 그 하위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겁니다.
외부와의 교류나 생각의 교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지요.”
임시정부 주석의 손녀딸이라 굳게 믿고 있는 어머니와 자신의 땅을 외부인이 침범했다는 이유로 무쏘 차량 한 대를 뾰족한 쇠막대기로 수십 군데 구멍을 냈던 아버지, 그 둘 중 누가 주도적으로 그 피해망상을 퍼뜨렸는지 모르나, 그들은 그들끼리 그 망상을 공유하며 키워 가며 깊은 병에 빠져들며 자신들을 괴롭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과격하다는 표현도 모자랄 공격성을 드러냈습니다.
병균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옮겨지고 어떤 외부와의 접촉도 거부한 채 자신들의 논리와 망상으로만 중무장해 가는 병, 그것이 공유 정신병이었던 겁니다.
그 어머니를 설득 끝에 (황당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일단 그녀는 병원으로의 동행에 동의했습니다)
병원에 입원시키고 아이들을 아동학대예방센터에 맡긴 후 저는 제 머리 속을 하이타이로 지워 내려고 기를 썼습니다.
아무리 그들을 위한 행동이었다고는 하지만 결코 유쾌한 추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저는 경기도 산간 지방의 외딴 비닐 하우스가 아닌 대명천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이 병의 독한 냄새를 감지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아우성쳤을 때는 그냥 웃고 넘어갔었습니다마는, 정진석 카톨릭 대주교가 “전교조에 안 들어간 사람은 사학법에 관심도 없고 따라서 전교조만이 개방형 이사에 선출될 수밖에 없다”고 우겼을 때는 안색을 바꿀 수 밖에 없었고, “바닷물의 염분이 3% 밖에 안 되지만 짜다! 25%의 개방형 이사가 이 나라 교육을 망칠 수 있다”는 한 국회의원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이지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끝마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이들이 아예 신입생 배정을 거부해 버리겠다며 강짜를 부리는 모습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 해서 남의 차를 박살을 내 버렸던 세 자매의 아버지와 빼다 박은 형상이고 말입니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어머니에게 그런 편지를 보냈었지요.
“적들이 아무리 우리를 탄압해도 우리는 결국 이겨낼 것이오. 날씨가 추워지오. 우리 강하게 이겨 냅시다.” 면서 흡사 양심수의 편지같은 비장한 문장으로 어머니의 눈시울을 적셨었지요.
그 옆에서 웃을 수도 감동할 수도 없는 묘한 심정으로 카메라만 들고 있었던 저는 “국민의 이름으로 전교조를 고발한다.”는 박근혜 대표의 말에 또 한 차례 오묘한 느낌에 허우적거려야 했습니다.
웃어야 하나, 숙연해져야 하나......
과연 저 사람들은 지금 1/3만 도입되는 개방형 이사의 자리를 전교조가 죄다 장악할 수 있다고 실제로 믿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한 가운데, 전교조로부터 아이를 구하겠으며 전교조를 국민의 이름으로 고발(?)한다는 피해망상과 그 공유 행태는 가히 경기도 동부 산골짝의 비닐 하우스의 여 주인장과 맞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럭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확인된 뒤 저는 정말로 진지하게 세 자매의 어머니에게 물었었습니다.
“어머니 정말로 임시정부 주석의 손녀딸이라고 믿으세요?”
그 대답은 “믿다니오? 사실이 그런데.....”였지요.
저도 진지하게 한 번 물어 보고 싶습니다.
“정말로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면 (그것도 정원의 1/3만) 조직률 22%의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할 거라고 믿으세요?”
그런데 어느날 라면집에서 읽었던 조선일보의 한 칼럼이 멋지게 대답을 해 주더군요.
“강행처리된 사학법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는 ‘이론’ 싸움은 실상 부질없는 입씨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화의 명분’에 불과한 ‘이론’이 아니라, 전교조 등 그쪽 진영이 한사코 사학법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것, 그래서 전교조 같은 것을 거부하는 진영으로서는 한사코 그것을 막으려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좋건 나쁘건 다 소용없고 저놈들이 하는 건 다 반대해야 된다......
이쯤되면 정신과 의사를 불러 보고 싶어집니다.
저 망상.... 사학법을 밀어붙이는 ‘그쪽 진영’에 대한 공포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를 물어 보고, 그 망상의 심각함이 어느 정도인지, 저들을 방치했을 경우 그 공유가 얼마나 크고 깊게 이루어질 것인지, 그리고 대체 치료법은 무엇인지를 인터뷰해 보아야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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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개정 반대투쟁에 대한 단상(하종강의 노동과 꿈에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