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위원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노동조합 위원장 한다고 동문회에서 저 제명한다고 난리 났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떤 학교를 나왔길래 노동조합 위원장 하는 것이 제명사유가 됩니까?”라고 물었더니 노동조합 사무국장이 옆에서 대신 답했습니다.
“우리 위원장님 육군사관학교 나왔어요.
육사 나온 대한민국 육군 대위 출신이에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노동조합 위원장이 있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육군 대위가 ‘군인의 길’을 포기한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위원장은 “저 지금까지 사람들한테 그런 질문 아마 천 번 정도 받았을 겁니다.”라고 말하며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천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동안 내내 그 위원장의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한 그루에 천만원 짜리 소나무가 강원도에서 뽑혀와 사단장 관사에 옮겨 심겨지는 것을 보았을 때...
새로 지은 탄약고에 비가 새, 탄약이 못 쓰게 될 위험이 있는데도 부대장이 건설업자를 한번 만나더니 준공허가를 내 줄 때...
수천 개의 기계 부속품이 영수증에 표시된 수량의 절반 정도만 입고된 것을 알았을 때...
납품 받은 군인들 부식 비용으로 지불된 돈의 절반이 다시 부대장 통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았을 때...
부대장과 기무사 장교와 헌병대 수사관이 함께 앉아서 “지금까지 다 그렇게 해 왔으니 그냥 넘어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승진에 목을 맨 장교들이 그렇게 부끄러운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승진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학교에서는 “우리는 나라의 간성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옳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자부심을 일깨워주던 학교 선배들이 직업군인이 된 뒤에는 대화 내용의 99%가 승진에 관한 것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부재자 투표를 하러 가는 군인들이 부대장 면담을 거쳐야 하고 부대장은 ‘왜 민자당을 찍어야 우리나라가 살아날 수 있는지’ 사병들에게 일일이 훈시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이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 판단하고 대위를 끝으로 전역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전역 신청을 하고 몇 개월 동안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어요.
‘저 놈이 제대하고 나가서 무슨 일을 터뜨릴지 모른다.’고... 부대장은 물론이고 그 지역 헌병대, 기무사의 어느 누구도 저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매번 "그렇지 않은 군인들도 많습니다."라거나 "직업군인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습니다."라고 토를 달면서 군인들의 명예를 지켜주려 애썼습니다.
비록 ‘군인의 길’은 포기했지만 그는 노동조합 위원장이 되어 또 다시 ‘나라의 간성’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육사 나온 대한민국 육군 대위 출신 노조 위원장이 있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저에게 짤막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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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사측의 억압에 힘들고 마음 흔들려 하던 저는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참으로 부끄럽고, 이것밖에 되지 못하는 제 자신에게 다시 한번 일어서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저 보다 힘들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셨습니다..
무엇이 진정 옳은 일인가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늦은 시간 강의를 마치고 먼 곳을 가셔야 하셨을텐데.. 먼곳이지만 이렇게 달려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힘든 이들을 위한 좋은 강의, 먼 곳이지만 저희 부산에서도 들을 수 있었음 하는 부탁도 아울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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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체인 이 사업장에서는 관리자들이 매장에 있는 돼지 삼겹살이나 생선을 여성 노동자 얼굴에 집어던지며 야단치는 일이 지금도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강직한 직업군인 출신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노동조합 가입률은 전체 직원의 10%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 한 줌밖에 안 되는 조합원들이 가열차게 싸움을 시작한 뒤로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다른 유통업체에서 스카웃 돼 온 책임자나 관리직 사원들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자기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러다가 노동조합 맛을 한번 보고 나서야(노동조합 맛을 본다는 것은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원들이 투쟁 조끼를 입고 사무실 앞에 모여서 ‘폭력 사원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치고 집회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로소 노동자들을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합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이렇게 매번 싸우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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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출신 노조위원장!(하종강 노동과 꿈에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