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내부에 견제세력이 없으니..."
[인터뷰] 삼성 노조 설립 관련 1호 해고자 이상호 씨
김태환 기자
“삼성이 내부에 노동조합 같은 견제세력이 없다보니 온갖 부패나 비리, 낡은 봉건적 세습 문제가 진행 중인 것입니다.”
세간의 이목이 ‘삼성비리’로 쏠리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BBK 비리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연이은 폭로와 양심선언은 그동안 삼성이 어떻게 법과 제도 위에서 굴림 할 수 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지금이 삼성의 모습에 대해 20년 전 노조설립을 위해 싸우다 해고된 이상호 씨(46세)는 “삼성은 비리와 비자금으로 공안 세력, 정권과 결탁해 무노조 신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씨는 본인 재판을 판결하던 부장판사가 삼성 변호사로 변신(?)해 법정에 나온 일도 경험했다.
100% 승리를 장담하고 의욕을 보였던 이 씨의 담당 변호사는 ‘전관예우와 급행열차’을 운운하며 재판을 포기했다.
이상호 씨는 삼성 노조설립 관련 1호 해고자다.
1987년 삼성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른바 ‘대자보 사건’의 주인공이다.
최근 이 씨를 만난 삼성의 인사관리 간부는 “이상호 파일이 있다”고 할 정도다.
그가 경험한 삼성으로부터의 감금, 폭행, 협박, 회유, 납치, 미행, 감시는 지금도 무노조 신화의 수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2년 전에 삼성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으로 노조설립과 관련해 도움을 청해 왔는데 들어보니까 수법이 똑 같아요.
다른 점은 회유할 때 액수가 더 커졌고, 납치도 국내가 아닌 해외로 한다는 겁니다.”
20년 전, 이상호씨의 경험은 진행형
20년 전 삼성을 이상호 씨의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했다.
26살 청년 이상호 씨는 1986년 군대를 전역하고 경기도 수원 삼성, 냉장고 생산 공장에 입사했다.
2년간 돈을 벌어 신학대학에 진학하려는 포부에서다.
그가 했던 일은 냉장고 도색 과정의 일부였다.
그 곳에서 1년 7개월을 열심히 했다.
관절염을 앓던 다리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하지만 이 씨는 공장 관리직원들의 욕설과 일상화된 반말, 비인간적인 노동강도에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삼성은 1987년 민주화 바람이 사내로 들어올 것을 우려해 매일 조회와 교육의 강도를 높였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에 대해 교육 받았다.
그리고 “삼성에 들어올 사람이 줄을 섰으니 언제라도 자를 수 있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친 한 노동자가 저녁 잔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음날 조회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다.
그 노동자는 두 명의 자녀를 둔 30대였다.
“열중쉬어 자세로 근무일지로 따귀를 때리는 겁니다. 조장 진급 케이스였으니까 꽤 오래 일 한 사람인데”
이 씨는 이 사건이 관리자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관리자의 공개사과와 막말, 욕설을 하지 말 것, 매일 해고 협박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은밀히 진행했다.
90명 도장반 노동자 중에 절반 남짓 서명을 받았을 무렵 공장에서 비상벨이 울리고 “휴게실로 모여라”라는 방송이 나왔다.
사고가 아닌 상황에서 라인을 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서명이 걸린 것이 아니라.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읽은 사측이 형식적인 사과의 자리를 만든 겁니다.
하지만 정작 들어보니 사과가 아니라 ‘본질이 왜곡됐다. 진의는 그것이 아니다’라는 훈시를 하는 겁니다.
” 일장 연설이 끝나갈 무렵 노동자들끼리 ‘박수를 치지 말자’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관리자의 연설을 마쳤지만 박수를 치는 사람은 사인을 받지 못한 단 두명 뿐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 씨는 꼭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벽보를 붙일 결심을 하게 된다.
다음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공장으로 들어오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2분 전에 이 씨가 기습적으로 붙인 대자보 때문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 안전부 직원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사진을 찍고 대자보를 띄어갔다.
회사는 발칵 뒤집어졌고 10여일 동안 탐문수사와 필적조회까지 하면서 색출작업에 나섰다.
그때까지 노동자들은 서명을 받은 이 씨를 보호하기 위해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씨는 자신의 서기 노트를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대자보를 내가 썼다”고 밝혔다.
따귀 맞을 각오를 했지만 정작 이 말을 들은 작업반장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다가 사무실로 뛰어갔고 곧바로 과장이 달려왔다.
사측은 이 씨의 요구를 받아들여 회식 자리를 만들고 책임자들이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려고 생각했는데 노동자들이 승리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 즉석 청문회 자리가 만들어지더라고요. 너는 언제 나 때렸지, 너도 그랬지. 너도...”
이 일이 있은 후 더 이상 노동자들은 관리자가 지나갈 때 지적을 받을까 식은땀을 흘리지 않아도 됐다.
갖가지 불만으로 잦은 다툼도 사라졌다.
자신감을 얻은 이 씨는 ‘나눔회’도 만들고 “야임마! 추방” 운동도 벌였다.
지금의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의 대학 등록금을 빌려서 제작한 리본을 1500명 관리자들에게 모두 달아줬다.
그리고 잔뜩 불만을 품은 삼성에 직격탄을 날렸다.
'노동 3권은 무엇인가'라는 유인물을 뿌린 것이다.
이때부터 삼성은 면담을 이유로 사무실 감금을 시작했고, 제때 치료 받지 못해 시커멓게 부어있는 무릎을 치료하라며 1년 유급 휴가를 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심지어 부모님을 설득해 해외 치료까지 주선해 주겠다고 회유도 했다.
그리고 24시간 감시와 미행이 뒤 따랐다.
“처음에는 멀리서 지켜보더니 나중에는 아주 1미터 이내로 밀착해서 붙어 다니더라고요.
집 앞 뒤로 승용차를 데 놓고 무전기로 시간별로 보고 해 가면서”
“나중에는 보수 규정 새로 하자고 하면서 도면 그리는 사무실로 발령을 냈어요.
그리고 일도 안 시키고 일주일 동안 조서만 꾸며요.
매일 사무실을 빠져 나와서 공장으로 달려가고. 싸우고 끌려오기를 반복했지요.
3층 화장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투신도 했고, 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자해도 해 봤어요.”
회사는 매일 같이 노조 전문가들을 동원해 이 씨를 심문하고 취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이나 한잔 하자며 이 씨를 동수원 모 호텔로 끌고 갔다.
직감적으로 납치된다는 느낌을 받은 이 씨는 강하게 저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호텔 방에서 간부들은 “당분간 집에 못 들어갈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때 이 씨는 “나는 이런 상황을 예견 했다. 내가 밤 12시에 여자 친구와 전화통화하지 않으면 곧바로 한겨레 기자에게 납치 사실을 알리기로 되어 있다”라고 기질을 부려 상황을 모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노동조합을 준비하던 두 명은 강원도와 대전으로 납치된 사실을 뒤 늦게 알게됐다.
이 씨는 회사의 회유 내용에 대해 “해고 직전에 기억나는 것만, 대학 4년 장학금하고 다른 공장 이전시 정착 지원금, 5개급 특진 뭐 그런거”라고 말했다.
‘왜 안 받았나?’라는 기자의 우문에 “처음에 시작할 때 특별한 사명감이 아니라 종교적 이유에서였어요.
주일날 교회를 못 가게 하잖아요.
주말마다 특근이니까.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우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어서. 사실 회유에 넘어가지 않은 것은 서명에 동참해주고 끝까지 비밀을 지켜준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다른 사람이 피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작심하고 대자보 쓸 때는 끝까지 싸워보자라고 결심하고 분신까지 각오했죠.
내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기 치거나 배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결국 이 씨는 대구 공장 발령을 거부하다 해고 됐다.
그리고 5개월 동안 출근 투쟁을 벌였다.
매일 출근하는 이 씨를 막기 위해 대리급 이상 직원 몇백명이 공장 출입구를 봉쇄했다.
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출근하면 관리자들이 버스를 따라 일제히 뛰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이 씨가 버스에서 내리면 관리자들은 사지를 꺽고 입을 틀어막았다.
이 씨가 복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사람들로 벽을 쌓아서 다른 노동자들이 이 광경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출근 시간이 지나면 이 씨를 풀어줬다.
시간이 지나자 컨테너박스에 감금도 했다.
이 씨는 이후 두차례 다른 회사에 취직했지만 해고 됐다.
삼성은 친절하게도 이 씨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다른 회사에 보내줬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삼성에서 노조 설립의 움직임이 보이면 어김없이 이 씨 주변에는 삼성 직원들의 감시의 눈빛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목사가 되겠다는 이 씨는 삼성 덕분에 20년 동안 수원에서 노동 운동가로 살아왔으며 지금은 민주노총 건설노조 지회장을 맡고 있다.
이 씨가 20년 전 경험했던 삼성의 탄압 사례는 지금도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들을 수 있다.
2007년11월21일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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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한장 붙였다가 20년 감시당한 전 삼성노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