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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18: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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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재운 |
 발레리나도 노동자입니다. - 토슈즈가 전하는 국립발레단원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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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오늘 나를 버렸어.
20년간 그와 함께한 내 동료들은 낡아서 버려졌지만, 그가 나를 떠난 이유는 그게 아니야.
내가 없으면 그는 춤을 출 수 없었어.
그렇게 하려고 나는 동전 두 개 만한 앞코와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바닥을 가지고 태어났지.
그 때문에 주인의 발은 굳은 살이 박혀 흉직해졌지.
발톱까지 갈라지고 벌어지기 일쑤고.
나는 영국에서 태어났어.
장인에 의해 정성껏 만들어진 나는 다른 애들 보다 4배나 비싸 주인은 나를 오랫동안 아끼고 아꼈어.
주인과 함께 하루 7-10시간씩 마룻바닥을 뛰는 게 내 임무였어.
일주일 후면 나도 다른 동료들과 같이 버려질 거였어.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선택받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런 생활을 숙명으로 알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주인은 사실 나와 같은 처지야. 나처럼 언젠간 버려지는 거지.
아니다.
사실 나보다 더 불쌍하지.
나야 일주일 남짓 그렇게 살지만, 그는 20년을 그렇게 살다가 버려지는 거니까.
나야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버려지지만 그는 그것도 아니야. 발레리나는 나이가 들면 안 된대.
춤만 추던 사람이 얼마나 막막하겠어.
왜 다른 미래를 생각하지 않냐고?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빼면 우린 계속 춤을 춰.
‘춤’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내 주인은 버려지기 전에 떠났어.
가게를 차렸다는 소문도 있는데 확실한 건 나도 몰라.
20년 동안 세상물정 모르고 춤만 춘 사람이 갑자기 뭘 할 수 있을까?
내 동료들 사이에선 나도 ‘최고’야. 나 역시 일주일만이라도 그와 함께 내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는데.
주인도 ‘최고’였는데, 그는 왜 떠나야 했을까?
이 글은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얘기다.
그곳에서 5,6년차 발레단원들로부터 사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 최고의 발레단인 그들의 평균 연봉은 2000만원 정도다.
토슈즈도 제 돈으로 산다.
하루 종일 춤 추며 잦은 부상을 입지만 인대가 늘어나거나 삐는 등 비교적 사소한 부상은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국립발레단은 한 해 한명 정도 100: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다.
최고의 발레인이 되려고 살인적 경쟁을 치른다.
“동료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데 출산휴가라뇨?“ 결혼과 출산은 생각도 못한다.
발레리나에게 출산은 곧 사형선고다.
그렇게 버텨도 30대 중반이면 토슈즈를 벗어야 한다.
이후 대책은 없다.
먹고살려고 보험모집인 등을 전전한다.
발레단원이 평생 신던 토슈즈를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발레리나를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
예술인들이 무슨 노동자며 노동조합이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춤추는 나무인형이 아닌 사람이다.
그것도 중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따라서 모두 노동자다.
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 베를린필하모니오케스트라, 비엔나필하모니오케스트라, 로얄발레단,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등 세계 유수의 공연예술단체들의 대부분 백 여년 전부터 노동조합은 만들어 스스로의 노동을 보호하고 예술을 발전시켜왔다.
지난해 취임한 발레리나출신의 최태지 단장은 “발레단원들이 발레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말이 실현되려면 ‘발레리나도 노동자’라는 생각을 먼저해야 한다.
* 국립발레단은 우리나라 12개 문화예술단체들과 함께 2003년에 문화예술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모인 공공노조에 소속돼 있습니다.
이후 노조는 발레단원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해 왔으며, 토슈즈 공급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국립발레단과 협의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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