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특별기획 [특수고용 노동자]
1. 첫 번째 기획
[법의 사각지대, 특수고용직] 껍데기 사업자 “비정규직이 부러워”
화물연대가 전격 파업 사흘 만에 파업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번엔 덤프연대가 6일부터 ‘특수고용직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갈 예정으로 있어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수고용직은 하는 일은 근로자에 가깝지만, 민법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직종을 말한다. 화물, 덤프, 레미콘, 지입차주 운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도우미, 애니메이터(만화가), 영화스텝, 병원 간병인, 철도매점 노동자, 보험모집인, 방송사 구성작가, 채권추심인, 야쿠르트 아줌마, 신문판매 노동자, 퀵 서비스 노동자, 대리운전 노동자 등 전국적으로 7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정규직은 논란의 소지가 있긴 해도 보호 법안이 마련돼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으나, 특수고용직은 아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근로자가 아닌 사업자로 간주돼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화물차주, 月 130만원 벌어···갈수록 빚만 늘어-
모 운수 소속 지입차주 김모씨(45)는 화물 운송으로 한 달 평균 5백70만원을 번다.
겉보기엔 남부럽지 않은 고액소득자.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한 달에 7,000㎞가량을 운행하는 화물차 유류비로 3백40여만 원, 차량 관리비 및 도로 통행료·식대 등으로 1백여만 원이 들어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은 1백30만원에 불과하다.
새벽 4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4시간 일하는 대가가 겨우 이것인가라고 생각하면 허탈감만 든다.
그래도 김씨의 법적 신분은 개인사업자다.
차량을 구입해 개인이 일감을 따는 직종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노동법에 보장된 근로자로서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의료보험도 직장이 아닌 지역조합에 가입해야 하고,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은 엄두도 못 낸다.
운송활동을 하다 크게 다쳐도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며, 거래기업에서 일감을 주지 않아 사실상 해고가 되더라도 ‘실업수당’ 한 푼 받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월평균 소득은 ‘－1백23만8천원’. 월평균 운송수입은 4백18만원이지만 총지출이 5백42만원에 달해 ‘적자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학습지 교사, 회사 납입금 맞추려 내 지갑 털기도-
모 학습지 교사 진모씨(29·광주 남구)는 요즘 점점 절망에 빠져든다.
100과목의 가정방문 수업을 맡아 하루 10시간 가까이 발품을 팔았지만, 최근 5명의 고객으로부터 살림이 어렵다며 “학습지를 끊겠다”는 해약 통고를 받았다.
고객을 모집하는 일은 진씨의 몫이 아니지만 해지 율이 높은 교사는 회사에서 특별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모집을 강요당하는 분위기다.
상당수 학습지 교사들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과목수를 맞추기 위해 허위로 고객을 가입시키기도 한다.
학습 비는 과목당 월 3만원.
허위 고객의 숫자만큼 자기 돈으로 대납하는 것이다.
진씨의 경우 지난달에도 6과목을 해약 통고받아 18만원을 자기 주머니에서 메웠다.
이번에 추가된 것까지 합하면 11건에 해당하는 33만원을 물어야 할 판이다.
진씨가 과목당 3만원에 100과목을 수업했을 때 수입은 월 3백 만 원이다.
이중 60%를 회사가 가져가고 진씨 몫은 40%인 1백20만원.
여기에 교통비와 휴대전화비 등 30여 만 원을 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90만원 안팎이다. 고객의 계약해지에 따라 ‘생돈’ 33만원을 대납하면 60만원도 채 안 남는 것이다.
-방송작가, ‘월급 제멋대로’ 회사횡포에 침묵만-
#방송작가 박모씨(28)는 일자리를 얻은 초창기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에 한 달 50여 만 원을 받았지만 큰 불평은 없었다.
이렇게 해서 큰 작가가 되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소속된 방송제작 프로덕션은 월 1백 만 원을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하고는 실제 70만~80만원을 입금시키기 일쑤다.
제작사에서 ‘업계의 관행’과 ‘능력이 구두계약 당시에 못 미쳤다’는 이유를 들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박씨는 “근로관계가 안정돼 있지 않아 인권침해도 빈번히 일어난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 같지만 정치권이나 정부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오승주· 임지선 기자 fair@kyunghyang.com〉
2.두 번째 기획
[법의 사각지대, 특수고용직] 4대 보험 못 들고 퇴직금도 없어
특수고용직 종사자는 정규직 및 비정규직 근로자가 부럽다.
근로자들에게는 당연한 직장건강보험·고용보험 등 4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근로계약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퇴직금 및 연월차 수당도 받지 못한다.
능력이 탁월한 경우 한 달 ‘억대’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정규직 근로자는 노동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사업주는 경영상 긴박한 이유가 없으면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없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에 비해 해고의 위험이 있고 임금 또한 낮지만 1년 이상 근로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고 4대 보험도 적용된다.
그러나 특수고용직은 회사 측과 ‘사업자 대 사업자’ 관계로 돼 있어 근로자들에게 주어지는 이 같은 보장책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 측의 지시와 내규를 따라야 하는 게 현실이다.
김 인재 상지대 법학과 교수가 2005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학습지 교사 10만 명 가운데 업무지시를 받지 않는 경우는 단 한건도 없었다.
소속 회사의 지시를 위반한 경우 65.3%가 일방적 해고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승주· 임지선 기자〉
3.세 번째 기획
[법의 사각지대, 특수고용직] “근로자다” “아니다” 접점 없는 대립
특수고용직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고용 유연성 등 정부시책과 맞물려 급격히 증가했다.
노사정위원회의 추산에 따르면 2004년 8월 기준으로 특수고용직은 71만1천 여 명.
최근에는 8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입법 제정 등 해법엔 진전이 거의 없다.
특수고용직을 바라보는 노사의 이견이 극명, 정부는 사실상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노동·경영계 대립=특수고용직은 근로형태로 볼 때 스스로가 개인사업주인 사장이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에 고용된 상태로 일하고 있어 근로자의 성격이 짙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경영계가 ‘근로자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동계는 “고용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특정사업자의 사업에 편입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얻어 생활하기 때문에 명백한 근로자”라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이들에게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의 노동3권을 보장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까지 냈다.
노동계는 최소한 화물연대 종사자·학습지교사·보험설계사·골프장 경기보조원·퀵서비스·대리운전사·검침원·식음료배달원 등이 특수고용직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위임·위탁·도급 관계에 의한 노무 제공자로 근로자의 주요 판별지표인 사용종속관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독립자영업자”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경영계는 노동계의 분류는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며 특수직 종사자는 현행 상법과 민법, 경제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큼 근로성을 부여하기보다는 보수·수당체계 개선 등을 통해 보완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도 곤혹=정부는 현재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근로자·사용자의 중간자적 입장’으로 정 리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에는 특수고용직에 대한 보호방안이 없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주장이 빗발쳐도 단속 근거가 없어 개별 사안마다 소송을 통한 법원의 판단만을 촉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특수고용직 종사자에 대한 근로자성 인정을 부인하는 판결을 잇 따라 내놔 현행법으로는 ‘근로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공약’(空約)이 되나=특수고용직 종사자의 ‘근로자성 인정’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
정부는 2003년 9월 노사정위원회에 특수고용직 특위를 구성, 논의를 벌였다.
그러나 특위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한 가지 논의 사항은 2년 이내 종결 한다’는 노사 정위 설치법에 따라 2005년 9월 활동을 종료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지난 2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특수고용직에 대한 보호대책을 올해 중으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특수고용직에 대한 실태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연내 보호대책 마련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호근 노사정위 전문위원은
▲업종간은 물론 동일업종 안에서도 노무제공 성격이 다양해 범위를 구분 짓기 쉽지 않고 ▲근로자성을 인정하면 합법적 노조 결성 등으로 집단화해 정부에 부담을 지울 수 있고
▲입법을 할 경우 기존 노동·경제법 등과의 충돌로 법적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 등이 있어 법제화가 결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승주기자 fair@kyunghyang.com〉
4.네 번째 기획
[법의 사각지대, 특수고용직] 나라마다 분류기준 달라
특수고용직은 나라마다 생성 과정과 직군이 달라 분류 기준이 각기 다르다.
그러나 대다수 국가가 업종의 특수성을 감안, 법 해석상 특례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노사정위원회에 따르면 아일랜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특수고용직 중에서도 근로자에 가까운 직종과 자영업에 가까운 직종을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 구분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특수고용직과 자영업자의 구분에서 ‘일의 수행과정상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는 피고용인’은 근로자로 판단하는 등 13개의 척도를 마련, 근로자성을 적용한다.
남아공도 타인의 지휘 통제에 종속된 경우를 엄격히 적용해 근로자로 판단하는 등 7개 척도를 통해 보호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처럼 법원 결정에 따르도록 돼 있다.
우리와 근로형태가 비슷한 일본에서 학습지 교사와 화물 차주는 특수고용직으로 법원 판결이 나 있지만, 우리와 다른 것은 근로자성(性)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근로자성이 인정됨에 따라 단결권 등 노동3권이 제한적이나마 보장된다.
이에 따라 화물 차주들은 지자체 등을 상대로 교섭을 벌이기도 한다.
미국은 자동차 판매업과 프리랜서 등을 비슷한 근로자로 인정하고 있다.
독일은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유사근로자’로 부르면서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적 입장으로 본다.
유사근로자는 근로자로서의 지위는 완전히 보장되지 않지만 연차휴가와 휴일은 근로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고 단결권과 단체 협약 권 등 노동권과 사회보장법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 등 프리랜서가 이에 포함된다.
프랑스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외판원·예술인·공동주택 관리자 등 7개 대표직군으로 나누고 직군별로 별도의 법 규정을 갖추고 있다.
단결권과 단체협상권 등 노동권도 보장하고 있다.
아울러 노사관계자와 정부 부처 등이 참여하는 국가개혁위원회 주도의 노·사·정 대화를 통하여 새롭게 나타나는 특수고용직 노동에 대한 규범과 원칙을 수립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오승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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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특별기획]-특수고용 노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