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번의 정권을 ‘빼앗긴 10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빼앗겼다기보다 더 많이 갖지 못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더 많은 부동산 소득과 이자 소득을 올릴 수 있었지만 지나친(?) 규제와 세금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재산을 불리지 못했다고 푸념하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고위직에 임명된 사람들의 재산 내역을 보면 도대체 무엇을 빼앗겼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반대로 “너무 많이 퍼 준 10년”이라고 생각하는 분야가 있으니 대북 관계와 함께 사회복지 분야가 그렇다.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학자들은 참여정부의 사회복지 예산 증가폭이 다른 나라와 견주어 너무 많이 높다고 여러 가지 통계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선진국들도 복지병을 앓고 난 뒤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는 추세에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마치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을 줄이는 것이 선진국형인 것처럼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럽 선진국의 줄어든 복지예산조차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의 몇 배나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몰라서 말하지 못했다면 무식한 것이요, 알고도 숨겼다면 비겁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명박 실용정부의 복지정책 기조 역시 그러한 주장들에 바탕하고 있다.
‘양극화’를 거론하는 것을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편 가르기’로 진단하고, ‘신앙심’을 양극화 극복 방안으로 제시하고, ‘저출산’과 ‘노령화’ 등 각종 복지 문제의 해법을 ‘가정’에 돌렸던 사람이 장관 후보자들의 워크숍에서 “(복지) 예산이 두 배나 늘었는데 체감도는 낮아서 ‘복지병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발언한 사실로 잘 드러난다.
그렇게 말한 당사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에 대한 질문을 받자 “우리나라도 복지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톤”이라고 답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스웨덴에서는 진보정당인 사회민주당이 모두 65년이나 집권을 했는데 지난 총선에서 12 년만에 패배하는 바람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들은 그 총선 결과를 “복지국가의 사망”이라고 성급하게 해석하고 노무현 참여정부의 분배정책을 비난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이를테면 “스웨덴 국민들도 결국 복지보다 성장을 선택했으니 그동안 스웨덴 흉내를 내 온 노무현
정부는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 복지 모델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는 스웨덴 우파연합의 정책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극좌파’에 가깝다.
스웨덴 우파연합은 그 정책들을 상당 부분 왼쪽으로 옮기는 변신을 함으로써 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이 스웨덴은 28.9%인데 한국은 8.6%밖에 안 된다.
정부 재정 중 복지 지출 비중도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50% 이상인데 한국은 23.4%에 머물러 있다.
스웨덴 집권 우파연합이 28.9%의 복지 지출 비중을 한국처럼 한자리수 수준으로 줄이거나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제도를 폐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대단한 유혹>이라는 캐나다 영화가 있다.
120명의 실직자들이 살아가는 작은 섬에 공장을 하나 지으려고 했더니, 의사가 한 사람 이상 거주해야만 공장 허가가 난다는 것이다.
의사가 없어 노동자들의 건강관리가 불가능한 지역에는 함부로 공장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의사 한 사람이 그 섬에 와서 한 달 동안 사회봉사 활동을 하게 되는데, 한 달이 다 지난 뒤, 그 섬을 떠나려고 하는 의사에게 그 마을의 ‘이장’쯤 되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8년 동안 매달 복지수표나 바라며 줄을 서왔어. 자네는 복지수표를 받기 위해 줄 서 본 적이 있나?
자네는 돈도 벌어야겠지만 부끄러움도 벌어봐야 해. ‘의사가 없으면 마을도 아니다.’ 그거지.
우리가 의사 한 사람 구해보자고 이러는 게 아니네.
마을 사람 120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라구.”
의사가 결국 그 말에 감복하여 마음을 바꿔 그 섬에 주민으로 남았고, 공장이 하나 지어져서 마을 주민들이 모두 노동자로 취업해 행복하게 살았다더라... 그런 내용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회와 우리 사회가 명백히 다른 점이 있다.
한 마을의 주민 120명이 아무도 직업이 없었지만 8년 동안이나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경쟁력을 갖춘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때까지 8년 동안이나 국가가 그 사람들을 거의 완벽하게 지켜줬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처럼, 병원 갈 돈 몇 천 원을 이웃에게 빌릴 수 없었던 가난한 어머니가 남의 동네 고층아파트에 올라가 아이들을 모두 던져버리고 자신도 떨어져 죽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봐줄 어른이 없는 가난한 어린 아이가 동네 개한테 물려 죽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전기료를 못 내 단전되는 바람에 촛불을 켜고 살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소녀 가장이 죽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맞벌이 부부가 문을 잠그고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다가 집 안에 불이 나는 바람에 아이들 셋이 죽어버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바로 옆에 붙어있는 캐나다에서도 그것이 가능하다.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직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다시 당당하게 노동자가 될 때까지 8년 동안이나 먹고 살 수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선진 사회에서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여러 차례 집권한 경험을 갖고 있는 유럽의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중산층들이 가장 이민을 가고 싶어 한다는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등도 이미 무상의료가 실현됐다.
질병에 걸리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똑 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권리가 많은 나라들에서 이미 제도화됐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조금 넓은 눈으로 세계를 보면,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 중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오히려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우리가 지금 선진국의 ‘복지병’을 걱정하는 것은 문제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아무리 부자들을 위해서는 못 할 말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거짓말도 좀 정도껏 해야 한다.
- <부산사회복지신문> 2008년 5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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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없어도 굶어죽지 않는 나라(하종강의 "노동과 꿈"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