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운 문화예술노조 애니메이션 지부장
“노동운동이 곧 비정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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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 어느 날. 국민대학교 2호관 건물에 걸개그림이 내걸렸다. 가로 25미터, 세로 18미터 크기의 초대형 그림. 농악대가 용(龍)의 등에 올라타 신명나게 노는 형상이었다. 등교하던 학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안기부 직원들이 나타났다. 걸개그림은 사라졌다. 사회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그림을 그렸던 학생들은 흩어졌다. 5월 문화제를 준비하면서 그림준비를 지시했던 선배학생은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까지 받았다. 그렇지만 그 사건은 기폭제였다. 걸개그림이 대학가에 널리 퍼진 것이다. 각종 집회나 시위현장에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날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 유재운(41) 지부장이다. 그는 현재 공공연맹 전국문화예술노조 수석부위원장 겸 애니메이션지부장, 민주노총 서울본부 남동지구협의회 의장,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전비연, 준비위) 부의장을 맡고 있다.
불쑥 찾아온 폐결핵
유 지부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에 관심이 많았다. 한때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갈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다.
“누가 그러더라구요. 만화나 그림은 그냥 그리는 게 아니라고. 세상의 이치를 알아야 잘 그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학에 갔죠. 들어가자마자 이념동아리였던 탈춤반에 가입했습니다. 데모 하러 대학 왔냐고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84학번)에 입학한 그는 학생운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학원에서 데생 강사로 일했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아 성적을 이유로 1년 만에 제적됐지만, 활동하는 게 마냥 좋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병마가 찾아왔다. ‘폐결핵 중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 가끔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오긴 했는데, 그토록 심한 상태인줄은 몰랐다.
“폐결핵은 약만 제대로 먹으면 전염되지 않아요. 그래도 중증이라니까 요양소에 들어갔습니다. 86년 7월까지 한 7개월인가 있었죠. 요양소를 나오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 학교도 제적된 상태이고. 쑥스럽긴 하지만, 같이 나온 동료들과 개장사를 해보려고 준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시안게임 때문에 혐오식품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더라고요. 결국 실패했죠.”
애니메이션 회사 취직
그러던 중, 그는 친구의 소개로 애니메이션 회사인 L필름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86년 9월의 일이었다. 원화담당으로 들어갔다. 원래 애니메이션은 동화, 원화, 레이아웃, 연출의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동화에서 원화단계로 올라가려면 최소한 3년에서 7년 정도의 경력이 필요하다. 그림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88년 학교측의 복학조치로 재입학한 후에도 아르바이트로 회사를 계속 다녔다.
“정규직일 때 월급이 70만~80만원 정도였습니다. 당시 잘나가는 대기업 과장이 50만원을 받았습니다. 수입이 좋았고, 보험가입도 됐어요.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금, 토, 일 이렇게 3일을 일하면 20만~30만원은 너끈히 벌었습니다.”
학교에 복학한 뒤 그는 다시 학생운동에 매달렸다. 89년에는 사회구조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걸개그림은 다시 그의 몫이었다. 91년 2월 졸업할 때까지 10여개가 넘는 걸개그림을 그렸다. 총학생회 선거, 메이데이 집회, 시위현장 등에 그의 작품이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폐결핵은 죽음의 공포가 되어 나타났다. 89년 가을, 대한결핵협회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모든 약에 내성이 생겨버려 3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심지어 담당의사는 “부모 앞에서 죽는 것은 불효”라고 말했다. 유 지부장은 3개월간 술만 마셨다. 낮에는 공원벤치에서, 밤에는 여관방에서 소주를 마셨다.
그런데 죽을 날이 다가오면서 기침이 뜸해졌다. 이상했다. 다시 결핵협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의 진단이 나왔다. 결핵균이 모두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완치’였다.
비정규직 운동은 현장에서부터
“담당의사가 의사생활 40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놀랐죠. 죽다가 살아났으니까요. 이른바 덤으로 사는 인생이 된 거죠. 그때부터 더욱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유 지부장은 다니던 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있었다. ‘프리랜서’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상 비정규직이었다. 7년을 묵묵히 일했다.
그리고 99년 7월 애니메이션 노조를 만들었다. 2003년 12월 소산별노조인 문화예술노조에 가입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지난해 9월 노동부가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입법예고했을 때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 유 지부장은 비정규직 운동에 모든 것을 걸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제 비정규직 운동을 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이 아니라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정부법안의 내용은 비정규직을 너무 참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노동운동 내부 정규직 조합원들의 무관심이 더 답답한 현실입니다. 어쩌겠습니까. 현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스스로 우뚝 서는 수밖에요. 참, 10월16일 비정규 대회를 기점으로 전비연이 준비위 꼬리표를 뗍니다. 민주노총 상설기구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지켜봐주세요. 저도 제 모든 것을 비정규직 운동에 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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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운 문화예술노조 애니메이션 지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