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과 인권위 안, 노동계 안에 차이가 있는데요.
정부안이나, 현재 많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는 인권위 안 중 어느 것에 따르더라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노동계(민주노총) 안이 주장하는 것은, 2년 이상 고용된 파견제 근로자나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정규직화 되어야 한다. 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2년 이상 고용된 근로자는 직접 고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98년에 제정된 법에 따라 보장되어 있는 내용을 어째서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민주노총이 다시한번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생겨나시겠죠.
그것은 실제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던 당시 한국의 경제적 조건 속에서, 자본이 취한 구조조정의 방향이 어떠했는가 속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1997년 한국에는 IMF가 들이닥쳤고, 경제 위기에 따른 파장이 전 사회적으로 확대된 바 있죠. 당시 기업들은 "회사 살리기"를 위해 "비용절감"의 방안들을 모색합니다. 기업들은 직접적으로는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공격하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하고요. 임금 삭감, 명예퇴직 권고로도 모자라 수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로 내몹니다. (그에 따라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와 같은 대규모 사업장에서 수천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려 격렬한 파업이 벌어지기도 했었답니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윤을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기계를 돌려야 하고, 기계를 돌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필요하겠죠. 즉, 인력을 감축하고, 감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죠. 일단 노동자들을 잘라내긴 했는데, 기계를 돌리려면, 회사를 가동하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보다 돈을 덜 들이고 더 많이 일을 시킬 수 있을까. 이 속에서 나온 것이 "비정규직화"입니다.
한번 정리해고를 겪어서 실업자로 내몰린 적 있었던 노동자들이나, 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일이라도 하는 게 어디야"라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겠죠.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요.)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신규 채용 시에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 계약직, 외주화 등을 통한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이미 정부는 1998년에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바 있고, 그 내용 중 하나가 "2년 이상 고용된 파견근로자,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는 직접 고용(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했죠. 그렇다면 기업은 1998년 경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계약직 노동자들을 채용하기 시작한지 2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노동자들을 순순히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는 방향을 택했을까요? 정답은 아니다. 입니다.
드라마 <신입사원>에는 한가인이 계약 만기를 앞둔 계약직 노동자로 나온다죠. 드라마를 자세히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계약 만기가 다가오는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지요?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2년 계약 만기 후에는 번듯하게 "정규직"이라는 명찰을 달고 직장을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 날을 기대하면서 즐거운 날들을 살아갈 것만 같은데. 그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한가인의 삶은 결코 그렇지 않지요. 그것은 계약 만기일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날"이 아닌, "해고되는 날"에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계약직/파견제 근로자들이 채용된 후 2년이 지난 뒤 기업들이 선택한 것은 "정규직 고용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이들을 무더기로 해고하는 것이었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렇잖아도 실업자가 넘쳐나고, 언제라도 일하지 못해 안달이 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마당에, 굳이 더 많은 돈 들여 정규직을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거죠. 정규직 되면 마음대로 부려먹지도 못하고, 맘대로 해고할 수도 없고, 해고하겠다는 압력을 넣어 노동조합 만드는 것 막을 수도 없고.. 오로지 인윤 창출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어떻게든 늘리고자 할 뿐,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만기 계약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묵살하고 있습니다. (새마을호 여승무원, 경찰청 고용직, 기아자동차 사무계약직 등. 정부 기관이건 일반 기업이건 구조조정 여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면서 노동자들을 공격하죠.)
따라서 노동계가 주장하는 "비정규법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이미 1998년에 제정되었던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보장되어 있는, "2년 이상 고용시 정규직화"라는 내용을 원칙적으로 확인하고, 2년이 되기 직전에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정규직 전환 책임을 회피해 왔던 모순이 반복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일 따름입니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이 내용에, 정부와 경영계가 그렇게까지 생색을 내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
이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며칠 전 단병호 의원이 "한가인은 정규직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는데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계속되어 왔던 비정규직 노예 생활, 이제는 끝내야 할 때가 아닐까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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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보호 법안 통과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