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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5 17:3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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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재운 |
 광주, 박종태 인간에 대한 예의(하종강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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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박종태, 인간에 대한 예의
또 어김없이 5월이 왔다.
80년 5월 이후 한 동안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그 사람이 광주민중항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아직도 용도 폐기처분되지 않았다.
요즘 들어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언론에 장황하게 소개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80년 5월 광주에서 수백 명 시민이 무참히 학살당한 사건에 대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입 꾹 다물고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문가연하는 그들의 세련되고 고상한 ‘자태’는 솔직히 가소롭다.
거창하게 무슨 역사의식이나 사회의식을 들이댈 필요도 없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에 속하는 일이다.
수백 명 시민이 무참히 학살당한 엄청난 사건에 대해 30년 세월 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던 ‘비굴’을 순수한 학자나 예술가의 ‘고뇌’였다고 포장하는 변명은 진압 당위성을 강조하는 극우보수 세력의 주장보다 오히려 구차스럽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총을 들었을까?
80년대 초, 노동자들과 함께 한 작은 모임에서 “내가 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자신도 총을 들었을 것이라거나 죽을 것을 알면서 도청에 끝까지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작은 메모판에 “총을 들었을까?”라고 적어 넣은 글씨를 아직도 지우지 못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그 메모판을 볼 때마다 수많은 민주 영령에 대한 부채감이 ‘트라우마’처럼 되살아난다.
그것은 거창한 역사의식이거나 사회의식이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예의에 속하는 일이다.
며칠 전, 화물연대 비정규직 노동자 박종태 씨가 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유서의 정갈한 글씨와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게 또박또박 적어내려간 문장을 읽다가 목이 멘다.
박종태 열사가 학창 시절 동아리 후배들과 찍은 사진들,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살아가면서 갚아야 할 빚이 하나 더 늘었다’는 생각으로 목젖이 묵직해졌다.
그러한 부채감 역시 인간에 대한 예의에 속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그토록 좋아하는 ‘선진국’에서는 주유소 사장들의 단결권을 인정했다.
이를테면 ‘주유소사장노동조합’의 합법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석유 회사들로부터 공급과 판매 등에 대해 통제를 받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그러한 결정은 단순히 노동기본권에 대한 이해가 높아서가 아니라 대기업의 횡포를 규제하는 공정한 경제 행위가 국가경제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의 훌륭한 지도자들은 트럭 한 대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고,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한 민주노총의 합법성을 문제 삼는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대해 고속도로에서 난폭 운전하는 화물차 운전자에 대한 비난으로 맞대응하거나 “죽으면 다 열사냐?”고 비아냥거리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화물 노동자의 죽음이 남긴 숙제
박종태 ‘열사’는 유서에서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라고 한탄했다.
논문을 정리하거나 강의를 준비하는 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당혹해한다.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새로운 일들이 계속 터지는 바람에 애를 먹는다는 것이다.
박종태 열사는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라면서 자신을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역사는 이렇게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켜왔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나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엇인가?
<경향신문> 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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