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썩을 것들 싹 쓸어 부러야제"
|막오른 2005년 국정감사|
청소노동자 빗자루 '불끈', 장기투쟁 노동자 "별 기대는 안 하지만…"
"국감에 채택되거나 우리 사업장 얘기가 나가서 주목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 9월22일 저녁 8시가 넘어선 여의도 국회 맞은편 국민은행 앞에서 만난 코오롱노조 조합원
이애경(32)씨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여기에 있지만 사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알아요.
200일 넘게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화낼 곳도 없는 것이 정말 답답해요."
"추석 땐 가족들도 '그만두라' 성화고…"
추석 때는 싸움을 그만두라고 하는 가족들의 성화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만두라고, 못 이긴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것이 어른들 보기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아 보였겠죠. 이제 실업급여도 끝나고 정말 힘들어 지겠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희망이 있으니까 그것을 믿고 끝까지 싸울 거예요."
이는 물론 이 씨만의 심정은 아니다.
이번 국정감사에 맞춰 노숙투쟁에 참가한 여성연맹 조합원 1천여명과 금강화섬, KCC, 엔텍, 경마진흥회, 상애원, 서해·태안레미콘, 하이닉스매그나칩 등 장기투쟁노조에서 올라온 조합원 200여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충북 영동에서 올라온 금속노조 엔텍지회 조합원 김영자(44)씨의 바람은 이전 국감 때 알려져 엔텍 악질자본가가 제대로 처벌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그네들의 투쟁은 이제 6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15년 넘게 가스레인지 배기후드 만드는 일을 하다가 노조 만들었다고 직장폐쇄를 당했어요.
노조 만든 것이 죈가요?
지노위가 부당노동행위로 판정을 내렸는데도 사장은 신경도 안 써요.
그래놓고 경총에다 교섭 위임하면서 10억 줬다던데 그거면 우리 조합원 32명 1년 월급 주고도 남아요."
어느새 싸늘해진 밤바람에 쓰레기를 담을 검정 비닐봉지는 '이불'이 되었다.
이번 노숙투쟁의 중심대오를 이루고 있는 40~50대 조합원들의 무릎에는 비옷과 비닐봉투가, 옆에는 이들의 작업도구인 빨간 고무장갑, 빗자루와 걸레가 놓여있다.
"국회 청소하려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리고, 먹고살아야 하는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도록 놔두는 놈들 쓸어 버려야제."
문예일꾼 박성환 씨가 가르쳐주는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걸쭉한 욕설이 이어지는 개사곡이 쑥쓰러워서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며 까르르 웃기만 하는 이들이지만 노동자는 신경도 안 쓰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는 거친 입담을 스스럼없이 쏟아냈다.
"저 썩을 것들이 뭐 우리 신경이나 쓰나. 한 것이라고는 지 입만 배불리고, 쌍꺼풀 수술이나 할 줄 알았제."
"저것들이 한 게 뭐 있어?"
오후 2시께 노숙투쟁이 시작되고 나서 비가 내리자 챙겨온 비옷을 여성연맹 조합원들에게 먼저 나눠주는 이들이 있었다.
코오롱노조와 금강화섬 조합원들이다.
벌써 두 번째 국정감사와 인연이 닿은 금강화섬 조합원들은 550일 넘은 투쟁기간만큼이나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국정감사라고 올라오긴 왔지만 누구에게 도움을 바라거나 기대기보다 우리 스스로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연대는 정말 중요합니다.
500일이 넘으면서 이 투쟁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고, 하루에도 마음이 수천 번 바뀌지만 끝장을 보고 싶습니다.
이대론 정말 물러설 수 없어요."
사측의 구조조정, 직장폐쇄에 맞서 이제 공장사수 투쟁을 100일 넘게 진행하고 있는 이상수(가명, 30)씨는 2년이 넘는 투쟁 때문에 부인과 7개월 된 아이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어 한없이 미안하고 미안하단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하고 싸우는 것보다 가정에서 싸워야 하는 것이, 가정을 지키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이 씨는 1박2일 노숙투쟁 일정이 끝나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투쟁현장에 서 있을 거다.
깊어 가는 밤만큼이나 이번 국감에서 이들의 절절한 사연이 다뤄질지 어둡기만 하다.
의원들에게 배정된 질의 응답시간은 15분. 수많은 노동자의 한과 절박함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작년부터는 그나마 '우리의원'이라 할 민주노동당 의원이 생겨 그나마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 또한 그리 쉽지가 않다.
'소수파'인 민주노동당이 악질기업주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그 많은 내용을 다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있다지만…
하지만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여성연맹 조합원들. 200명 중에 정규직은 7명밖에 안 되는 기륭전자 조합원들. 200일 넘게, 500일 넘게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KCC, 금강화섬 조합원들. 이들이 서로를 보듬는 손길을 어둠을 물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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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를 맞는 여의도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