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과 정세 반전은 가능한가?
사회주의자들은 어떻게 투쟁하고 있는가?
뉴코아-이랜드 투쟁이 우리에게 길을 가리키고 있다. 기나긴 터널의 끝을 마침내 벗어날 것인가? 수세에 수세를 거듭해 온 현 시기 계급투쟁! 마침내 반격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가?
투쟁 경험 하나 없는 유통서비스산업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매장과 계산대를 점거하고 20일 이상이나 매출을 완전 마비시키는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잠시나마 사업장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했다. 두려움과 혼란에 휩싸인 이랜드 자본은 “이 나라가 시장경제의 국가 맞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나?”고 물어야 했다.
‘자본가의 소유권이 이렇게 침해받고 있는 나라가 자본주의 맞나?’고 따져 묻고 싶었던 것인가? 구조조정, 정리해고, 계약해지, 외주 ․ 용역화 등 끝도 없이 계속되는 자본의 공격으로 노동자가 생존의 위협 속에 살면서 죽지 못해 싸우고 있는 이 나라가 갑자기 이중권력 상태에라도 들어갔다는 소리인가?
자본가가 자기 소유물을 자기 맘대로 못하고 잠시나마 통제권을 잃어버려 ‘내가 여기 주인 맞나?’ 하는 당혹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노동자의 사업장 점거 파업이다. 점거파업은 생산과 이윤에 타격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공장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묻게 한다. 자기 사업장에서 전제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자본가가 불현듯 이중권력의 유령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랜드 자본이 본 것도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이중권력! 먼 얘기처럼 들리지만 현재와 같은 계급투쟁의 일상 시기 속에서도 예고 없이 출몰하여 힐긋힐긋 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자본의 공격 앞에서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는 국면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이런 상황은 틈틈이 있어 왔다. 반격의 실마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정세 반전의 계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잡을 준비와 태세가 안 되어 있어서 문제일 뿐이다. ‘퇴조기’니 ‘침체기’니 하면서 정세 탓만 한 채 반격을 위한 전투대형을 갖추기 위한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회피해서 문제일 따름이다.
이번 뉴코아-이랜드 투쟁은 노동자가 앉아서 죽을 수 없어 결사적으로 생존권 사수투쟁을 전개하면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진 자본가 소유체제를 침해해 들어가는 투쟁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조건이 현 시기 정세에 잠재해 있음을 우리에게 다시 환기시켜 준다. 일상적 시기와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공세적 투쟁 시기 사이에 결코 만리장성을 쌓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자본주의다. 노동자에게 체제의 고통을 떠넘김으로써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쇠퇴기의 병든 자본주의,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만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현 시기 반동적 자본주의가 그러한 정세적 조건을 공급하는 장본인인 것이다.
문제는 ‘정세’ 탓, 주체역량 탓 하지 말고 이 잠재해 있는 조건을 끌어내서 작동시키는 것, 생존권 방어투쟁들이 품고 있는 공세적 잠재력을 터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퇴조기’와 ‘주체역량’을 내세워 일상적 시기와 공세적 투쟁 시기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지 않고 반전의 고리, 이행의 고리를 움켜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리를 제 때 꽉 쥘 수 있기 위해 사회주의자들과 선진노동자들이 먼저 전투대형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0여 년 동안 계속되어 온 이 지긋지긋한 수세적 정세에 마침표를 찍고 반격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정세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10년의 수세: 자본의 공격과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
“구조조정 저지”, “정리해고 저지”, “계약해지 반대”, “외주화 반대”, “비정규직 철폐”!!! 오늘 이 땅 도처에서 들리는 구호들이다. 현 시기 자본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이 외치는 투쟁의 슬로건들이자 생존의 요구들이다.
현 시기 반동적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 임금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 속에서 위기의 출구를 찾고 있다.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으로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산이 전면화 되고 이제 상시화 되어버렸다.
체제의 고통이 모두 노동대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른바 ‘사회 양극화’로 표현되는 노동대중의 경제적 곤궁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IMF 위기 이후에도 절대 빈곤층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안정적인 일자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신규 취업의 80% 가까이가 비정규직이고, 그 대부분이 월 100만원도 안 되는 일자리들이다. 자본가들과 자본가 정부는 말한다. ‘고용이 유연해져야 일자리가 창출된다. 해고가 쉬워져야 고용도 쉬워진다.’ 그렇게 해서 기존 취업노동자에 대한 고용불안 공세를 강화하고, 정리해고/ 계약해지를 들이민다. 여기서 ‘창출’된 일자리는 비정규직과 외주 ․ 용역으로 채워진다.
1997년 IMF 위기를 맞아 남한 자본주의는 이 역사적 파산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통분담’을 내걸고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정리해고 공세를 대대적으로 자행했다. 그러나 자본의 공격은 IMF 탈출로 멈추어지지 않았고, 2007년 현재까지 ‘고용유연화’/ 비정규직 확산 공세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가 한 시기 전체를 특징짓는 정세의 상시적 조건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현 시기 자본가계급은 어떻게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는가?
남한 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경쟁 격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단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다. 노동대중을 제물로 삼자! 노동자들에게 모든 고통을 떠넘기자! 노동자들이 그 동안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성과물들을 모두 회수하자! 해고를 자유롭게 하자!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자! 최대한 외주 ․ 용역화 시키자! 노동강도를 높이자! 현장통제를 강화하고 전환배치를 전면화 하자! 단협과 임금체계를 개악하자! 법 ․ 제도를 개악하여 노동자들이 저항하고 투쟁할 수단을 빼앗아 버리자! 노동조합과 파업을 무력화시키자!
생존의 위협에 맞서 노동대중은 정리해고 저지투쟁, 계약해지 반대투쟁, 외주 ․ 용역화 반대투쟁을 했다. 또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에 저항하는 투쟁을 해왔고, 임금 ․ 단협의 저하를 막기 위해 투쟁해 왔고,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도 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방어적 경제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노동법 ․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투쟁도 해 왔다. 그렇게 10년 동안 ‘반대’ 투쟁, ‘저지’ 투쟁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현 시기는 온통 노동대중의 이 같은 반대 ․ 저지 투쟁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상시적인 자본의 공격과 함께 이러한 방어적 대중투쟁이 현 시기 정세를 구성하는 또 하나 상시적 조건이 되어 있다.
개별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절박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투쟁해 왔지만, 전체 계급투쟁으로 봐서는 10년 동안 수세가 계속되고 있다. 개개의 투쟁은 그 투쟁방향과 요구안에서의 수세적 기조와는 달리 많은 경우 전투적 양상을 띠고 있지만, 전체로서의 계급투쟁 형국은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반대’와 ‘저지’를 중심으로 하는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 이러한 계급투쟁 형국은 이제 넘어설 수 없는, 고착된 것인가? 저지 ․ 반대 투쟁을 넘어서 공세적인 투쟁,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은 당분간 불가능하고 먼 훗날의 가능성으로 돌려야 하나? 계급 역관계를 바꿔내고 정세를 반전시킬 가능성은 이 당면의 반대 ․ 저지 투쟁들로부터는 나올 수 없는 것인가?
반대 ․ 저지 투쟁과 공세적 투쟁 사이: 만리장성인가 이행인가?
현 시기 계급투쟁이 제기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선진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명확히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저지 ․ 반대 투쟁하는 대중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전망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10년 이상 동안 계속 못해 왔다. 오히려 바로 이런 무능력이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을 넘어서지 못하고 수세적 정세가 고착되어 가도록 하고 있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해서 선진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지도력 부재라는 이 공백을 틈타 개량주의자들이 발호하여 계급투쟁을 거듭 수세로 몰아갈 수 있었고, 이제는 개량주의자들이 압도적 우위 속에서 이 수세적 정세를 고착시켜버릴 지경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다람쥐 챗바퀴 도는 이러한 반대 ․ 저지 투쟁 대신에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가지고 현재의 고용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개량주의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반대 ․ 저지 같은 방어적 투쟁 대신에 ‘공세적으로’ 대안을 제기하며 사회적 교섭과 사회적 합의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 문제는 (구조조정을 수용한 속에서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로, 비정규직 문제는 (계급 해체를 유도하는)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나아가 남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간 제기해 온 “분배를 통한 성장”을 넘어 이제는 ‘공세적으로’ 각종 “진보적 성장전략”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에게 한 번 남한 자본주의를 맡겨 봐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어서 고용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노조관료들과 민주노동당 등 개량주의 세력이 이 쇠퇴기의 병든 자본주의,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마저 공격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이 반동적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구원투수, 외과의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현 시기 수세적 정세를 딛고 반격으로 나아가는 데 최대의 장애물로 서고 있다.
개량주의자들이 대안이라고 내놓는 것이 공세적 대안이기는커녕 이렇듯 투항적이고 무기력하며 기만적이라는 것은 선진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투쟁하는 노동자라면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개량주의자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개량주의자들의 계획을 대안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의 무능력으로 인해 다른 대안이 없어서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대안이 못 되고 있지 않은가?
사회주의자들과 선진노동자들도 반대 ․ 저지 투쟁에서가 아닌 다른 데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인가? 이러한 방어적 경제투쟁은 그냥 방어적 경제투쟁일 뿐, 공세적인 투쟁,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의 가능성은 다른 어딘가에서 찾아 와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 시기는 일상 시기, 비혁명적 시기이므로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은 불가피하며,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공세적인 투쟁은 먼 훗날의 과제로 미뤄두어야 하는가?
둘 다 아니다. 현 시기 수세적 정세는 불가피하지 않으며, 반격과 공세로의 전환 가능성도 다른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전개되고 있는 반대 ․ 저지 투쟁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
노동대중의 반대투쟁, 저지투쟁들은 자본의 공격만큼이나 끊임없이 대중투쟁으로 터져 나왔고, 지금도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지만, 마르지 않는 샘처럼 결코 줄어들거나 소멸하기는커녕 새로운 노동자층들에게로 흘러들어가 계급투쟁의 저변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이 반대 ․ 저지 투쟁들에서 말고는 다른 데서 정세 반전의 가능성은 나오지 않는다. 오직 여기서만 나온다. 이 모든 투쟁들이 방어적인 투쟁이지만, 그럼에도 이 투쟁들은 반격을 위한 힘들을 모아낼 수 있고, 계급 역관계를 바꿔낼 수 있고, 수세에서 공세로 정세 반전을 이뤄낼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오직 문제는 이 잠재적 가능성이 현실화 할 수 있도록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열어주고 전진하는 길을 제시하고 승리하는 방법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못해서이다. 혁명적 지도라는 고리가 빠져 있어서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선전써클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 공백을 메우려고 하기보다는 현 시기 반대 ․ 저지 투쟁과 공세적인 투쟁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고 그럼으로써 수세적 정세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당면 투쟁과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에 도전하는 투쟁 사이에 놓인 간극을 잇기 위해 다리를 놓으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분리를 고착시키려 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노정협 같은 선전써클들이 그러듯 일상적 시기와 혁명적 시기를 기계적으로 나눔으로써 방어적 투쟁에서 공세적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매개적 이행적 요구를 현 시기에 맞지 않다고 기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 시기 “구조조정 저지/ 정리해고 반대” 요구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이러한 생존의 위협에 맞서고 대중의 절박한 필요를 충족시켜줄 방책으로서 자본주의의 구조를 침해해 들어가는 “노동자 생산통제/ 영업비밀 철폐” 요구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이중권력 시기, 혁명적 시기에나 가능한 요구이므로 현재와 같은 일상적 시기에 내거는 것은 오류라고 기각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상적 시기에는 일상적 요구, 당면 투쟁의 요구로만 한정해야지, 당면 투쟁에서 권력 쟁취투쟁으로 나아갈 연결 고리를 붙잡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 밖에 안 된다. 결국 우리는 ‘반대 ․ 저지’ 요구를 넘어서는 요구를 제기하지 말아야 하며, 당면 반대 ․ 저지 투쟁에서 더 나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세’ 상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은 불가피하며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공세적인 투쟁은 먼 훗날의 과제로 미뤄둬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헛되게 매개적 이행적 전술과 요구 ․ 강령을 통해 계급투쟁을 조직하고 지도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기회주의에 대한 폭로와 최대강령적 사상 선전에 집중해야 한다... 등등.
우리는 폭로와 선전이 현 시기에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생한 폭로와 정력적인 선전이 더욱 더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도 매개적 이행적 요구 ․ 강령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요구 ․ 강령과 전술을 통해 계급투쟁을 조직, 지도하고자 할 때에만 선전써클들이 안고 있는 무기력함의 근원인 일반적 폭로와 추상적 선전의 한계도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추상적 선전주의는 단지 무익하고 무기력해서 만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권력/ 프롤레타리아 독재 같은 최대강령적 사상을 무매개적으로, 즉 현 시기 계급투쟁의 과제와 무관하게 제기함으로써 투쟁하는 대중들로 하여금 그 사상과 멀어지게 하며, 그 때문에 당면의 반대 ․ 저지 투쟁으로부터 노동자권력 쟁취투쟁과 같은 최대강령 실현을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행의 고리를 붙잡는 데서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선전써클들의 추상적 선전주의와 ‘퇴조기’ 이데올로기
추상적 선전주의와 함께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폐해가 ‘퇴조기’론이다. 사회주의 선전써클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이 퇴조기 담론을 하나의 이념 체계로까지 끌어올린 것은 사노신이다. 사노신에게 그것은 과학적인 정세인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다. 요구 ․ 강령과 전술 제시를 통해 계급투쟁을 조직, 지도해야 하는 임무를 부정하고 써클적 선전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말이다. 현 시기 계급투쟁이 공세기나 고양기가 아니라는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퇴조기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원래 ‘퇴조기’, ‘후퇴 시기’ 규정은 혁명적 정세 안에서의 단기적인 퇴조와 후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세 규정을 처음 쓴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는 그 이전의 1, 2차 대회 때까지 코민테른 당들의 당면 과제가 되었던 직접적인 권력투쟁(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이 패배로 끝나고 자본의 반격과 공세를 맞이한 상황에서 우선은 노동자 통일전선 전술을 통해 대중을 전취하는 데 주력하고 그럼으로써 다시 공세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퇴조기’, ‘후퇴 시기’ 규정을 내렸다. 그러니까 혁명적 정세 안에서의 단기적인 정세 급변에 따른 전술 전환의 계기를 포착하고 확인하기 위한 규정이었다.
그러면 우리의 선전써클들이 이 같은 전술 전환의 계기를 포착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적 맥락에서 퇴조기 규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반드시 혁명적 정세 속에서가 아니더라도 현 시기 계급투쟁 정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 퇴조기 규정에 따르는 어떤 전술도 제출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런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선전써클들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퇴조기 규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선전써클들은 87년 대투쟁 이래 배출되었던 선진노동자층이 90년대를 거치면서, 특히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운동의 몰락 과정을 거치며 관료화 우경화 등으로 소멸했기 때문에 이러한 ‘퇴조기’에서는 먼저 새로운 선진노동자 주체를 발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퇴조기’에서는 노동자 통일전선 같은 대중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전술적 개입, 지도가 아니라 먼저 사회주의 사상의 선전을 통해 선진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사회주의자로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퇴조기는 곧 써클적 선전의 시기를 표현하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선진노동자층이 소멸했다는 주장도 과장이지만, 이러한 주장을 ‘써클적 선전의 시기’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근거로 삼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선진노동자층이 축소, 왜소화 된 것은 다름 아닌 계급투쟁에 대한 사회주의 지도력의 결여, 실종에 그 원인이 있다. 선진노동자들이 대거 사회주의 운동으로, 혁명적 당 운동으로 조직되어 계급투쟁에서의 지도력을 행사해야 할 바로 그 시점(말하자면 97년-99년 시점)에 사회주의 써클들은 이러한 정치적 ․ 조직적 지도력을 공급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여전히 폐쇄적인 써클적 선전활동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선진노동자층의 축소, 왜소화와 개량주의 진영으로의 투항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훈을 찾지 못한 사회주의 써클들은 자신들의 무능력의 결과인 이 축소, 왜소화를 다시 써클주의와 선전주의를 재생산하기 위한 근거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현 시기 자본의 공격에 맞선 방어적 대중투쟁들이 그 잠재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공세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배경에는 명백히 이러한 장애요인들이 놓여 있다. ‘퇴조기’를 빌미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단지 기회주의에 대한 일반적 폭로와 추상적 선전으로 제한하는 것으로는 이러한 당면 반대 ․ 저지 투쟁들을 주도해 나갈 선진노동자 주체들을 배출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존 선진층의 전망 부재로 인한 혼란과 침체, 투쟁 기권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퇴조기 이데올로기를 명분 삼아 폭로와 선전으로 자족하며 써클주의를 재생산하는 활동으로는 기회주의 진영으로의 투항을 거부하고 과감히 사회주의 운동, 혁명적 당 운동으로 투신할 선진노동자층을 결코 양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 시기 계급투쟁에 대한 혁명적 지도력 확립과 혁명정당 건설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와 불신의 씨앗만 선진노동자들 사이에 퍼뜨릴 뿐이다.
퇴조기 규정을 내세워 현 시기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반대 ․ 저지 투쟁과 부르주아 체제의 토대 자체를 겨냥한 공세적인 투쟁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으려고 하는 써클적 선전주의로는 선진노동자층의 확신 결여와 지리멸렬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주의로부터 멀어지게만 함으로써 단지 개량주의로의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다.
추수주의와 이행강령
노정협과 사노신 같은 사회주의 써클들의 추상적 선전주의는 조합주의 ․ 경제주의의 빌미가 됨으로써 현 시기 수세적 정세를 재생산하고 정세 반전을 지연시키는 한 가지 요인이 되고 있다. 추상적 선전주의는 일상적 시기와 혁명적 시기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설치하고, 그리하여 당면 투쟁과 권력 투쟁 사이의 간극을 이을 가교로서 제출된 이행적 요구 ․ 강령을 이중권력 시기, 혁명적 시기에나 적용 가능한 것이라며 기각한다. 정세 반전의 고리를 잡기를 거부하고 난 뒤에 할 수 있는 것은 당면 투쟁의 요구들을 추수하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방어적 경제투쟁의 요구들이 대중의 절박한 필요를 표현하는 요구들이라 하더라도 그 요구들을 단지 추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구 투쟁이 품고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끌어내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사명에 연결시키는 것이 혁명가의 의무다. 이 연결은 이행 요구들을 가동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과 계획을 폭로하고 그럼으로써 자본주의 이윤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으로 나아가게 할 이행강령이 바로 지금 여기서 필요하다. 이러한 이행강령이 없이는 최종적으로 추수주의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고 수세적 정세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는 추상적 선전주의는 현재 사회주의 지도력 확립 및 이를 통한 강령 구축과 당 건설로 가는 길에서 가장 고질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다. 추상적 선전주의는 단지 추상적 선전주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써클적 종파주의와 ‘각개약진주의’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써클주의와 각개약진주의를 딛고 사회주의자들의 단결과 도약의 길로 나서자!
현재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은 그 동안의 써클적 분립과 각개약진의 벽을 헐고 계급운동 속에서 사회주의 지도력을 세워내 개량주의에 대당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안으로 나서고자 새롭게 단결의 기운을 만들어가고 있다. 당 건설을 앞당기는 사회주의 정치조직 운동의 질적 도약을 마침내 이뤄내느냐 하는 기로에 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질적 도약을 이뤄낸다면 그것은 반격과 정세 반전에 가로 놓인 주요 장애물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도약의 과정 자체가 선진활동가들을 규합하고 대중들 속에서 그들의 지도력을 확립시켜주는 과정이며, 또한 추상적 선전주의/ 써클적 종파주의/ 각개약진주의라는 장애물과의 투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노정협 같은 선전써클은 “아직 각개약진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이 단결하여 이러한 도약을 함께 이뤄내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 각개약진이 더 필요하다는 노정협의 주장은 곧 ‘퇴조기’를 구실로 지금 반격과 정세 반전은 불가능하고 여전히 수세적 정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각개약진’이라는 이름으로 써클 ․ 종파의 유지 확대를 위해 사회주의자들의 단결과 도약을 거부하고, 그럼으로써 반격과 정세 반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제거를 거부하는 써클적 종파주의와의 투쟁이 또한 필요하다. 이 종파적 써클주의와의 투쟁이 개량주의와의 투쟁 못지않게 현 시기 정세 반전의 전제조건이자 선결과제가 되고 있다. 현 시기 계급투쟁에서 실종되어 있는 중심 고리, 사회주의자들이 전력을 다해 움켜쥐어야 할 정세 반전의 중심 고리는 노동계급운동의 지도력 위기를 해결할 <사회주의 지도력의 확립>임을 잊지 말자. 그 길로 가기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단결과 도약의 길에 주저 없이 나서자! 그리하여 이 지긋지긋한 수세적 정세를 끝장내고 반격으로 나아가자!
노동자해방 당 건설 투쟁단 (당/건/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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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임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