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건국 60년”을 기념하면서 언론들은 그 동안의 한국 경제 성장에 주목하고 그것을 “한국의 기업인들이 이룩한 신화”라고 칭찬하는 특집들을 마련했다.
심지어 머나 먼 독일에서 우리나라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흘린 땀과 눈물조차 군사정권의 ‘개발독재’를 찬양하는 도구로 써 먹었다.
한 방송사가 “그 신화의 그늘에서 고통당했던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를 느꼈다”고 연락을 해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개발독재’ 당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고품질 저임금 노동력이었다.
“기업인들이 신화를 이뤄냈다.”고 하지만 결국 그 신화는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가능한 ‘노동자들이 이룩한 신화’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낮은 노동비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노동자들의 기본적 요구조차 반체제 운동으로 간주해 가혹하게 처벌했고, 각종 노동관계법들은 노동운동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제정되거나 개정됐으며, 기업은 노동조합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제도권 교육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은 철저히 배제됐고, 언론 역시 노동문제에 대해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상징되던 당시 노동자들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 바로 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 청계피복, 동일방직, YH 등 수 많은 민주노조운동이 전개되었다. 오랜 기간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의 요구가 필연적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었던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어느날 갑자기 터진 사건이 아니라, 전태일 열사 사건 이후 쌓여온 노동자 생존권 요구 운동의 활동이 쌓여 온 결과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며 한국 사회 노동자의 권리는 비약적으로 향상됐지만, 그래도 아직 후진국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3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이고, 공공부문의 단체행동권은 거의 불가능하도록 제약 받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거의 산업혁명 초기에나 있을 법한 비인간적 노동조건으로 생존권을 위협 당하고 있다.
세계 12위권을 자랑하는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한다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우리 사회에 형식적 민주주의는 완성됐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정부를 거치는 동안 구속 노동자 수는 점점 더 가파르게 많아졌는데, 도대체 이런 민주주의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 아직까지 ‘민주화’는 이루지 못한 꿈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많은 시민들은 “노동자들의 권리가 과도하게 보장됨으로써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정규직 기득권자”라는 표현으로 가해지는 비난은 그러한 오해와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비정규직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대자본과 맞서는 상황에서는 결코 기득권자라고 볼 수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요구가 “정규직이 돼도 별 수 없다.”는 자조적 탄식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다.
저임금을 경쟁력 기반으로 하는 기업 경영방식이 고착화되면서, 기업은 성장하지만 그 성장의 과실이 노동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면서 경제 전체를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가 한국 경제에서는 거의 끊긴 상태이다.
그 상징적 징표가 바로 비정규직이다.
지금도 KTX, 이랜드, 기륭전자, 코스콤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천 일 또는 몇 백일이 넘는 장기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들의 기본적인 요구조차 수용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노사관계의 현주소다.
사람이 60일을 넘게 굶어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데도 기업의 대표이사는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반기업적 활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는 회사는 없다.”고 떳떳하게 강변한다.
자본가들의 그런 뻔뻔한 처신을 계속 용납하는 사회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어 결국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거시경제학 분야의 중요한 성과이고 교훈이다.
모든 비인간적인 것은 정당할 수 없다.
기업들이 인건비를 절약하면 노동소득의 비중이 낮아져 국가경제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
인건비를 절약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나야 국가경제에 유익하다.
특별히 진보적인 경제학이 아니라 저들이 주장하는 시장경제주의의 시각으로 볼 때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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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60년(?) 노동자가 이룩한 신화(하종강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