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에게 보내는 편지
[반자본주의 ABC]
촛불이 사그라지고 있다.
광장을 밝히고 희망을 열었던 촛불은 이제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 할 듯싶다.
하지만 촛불은 위대했다.
단번에 지배계급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물론 우리 모두가 권력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만났고, 촛불을 들고 연대했으며, 촛불을 들고 투쟁했고, 촛불을 들고 눈을 맞추며,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고 권력의 근본이라고 다짐했고 그것들을 되찾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촛불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광장의 촛불이 작아지고 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데 영원히 꺼지지 않는 가슴 속 촛불로 옮기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촛불은 계급을 담아내지 못했고, 권력을 향해 전진하지도 못했다.
권력을 향해 촛불을 치켜들고 계급으로 촛불을 강화시키지 못하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촛불을 보면서 절망을 느꼈다”는 참담한 고백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촛불은 결코 노동계급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민주의 이름으로, 시민의 이름으로 노동계급을 광장의 구석으로 몰았다.
더구나 촛불광장에 울려 퍼진 노래는 거룩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었다.
부르주아적 관념이 덕지덕지한 노래에 취해서 그런지 ‘명박산성’조차 제대로 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촛불시위는 부정선거에 항의했던 그루지야의 장미혁명이나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과 유사하다.
하지만 촛불을 너무 탓할 일은 아니다.
“어떤 시대든 그 시대를 지배하는 관념들은 지배계급의 관념들이다.”
지배계급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어느 것보다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은 물론 마치 상식처럼 느끼게 만든다.
자본지배가 당연하고, 이윤추구가 당연하고, 시장경쟁이 당연하고, 의회주의가 당연하고, 양극화가 당연하고, 폭력지배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촛불은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에 포위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저항의 분출이었지만 부르주아들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다.
설사 촛불이 부르주아들의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했더라도 좌파의 도움이 절실했을 것이다. 좌파는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들불로 타오르도록 이데올로기 장벽을 깨뜨리고 희망을 열었어야 했다.
하지만 부르주아지가 쳐놓은 장벽에 갇혀있는 촛불을 구출하기에는 좌파들의 역량은 부족했다.
더구나 촛불은 지배계급과 지배질서의 정당성을 단칼에 쓸어버렸지만, 좌파를 스스로의 미래와 상관없는 불평분자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권력으로 계급으로 전진하지 않았던 것이다. 좌파가 자본주의를 역사의 법정에 세우고 反노동자주의에 일체를 바치지만 촛불은 좌파를 신뢰하지 못했다.
좌파에게 미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오늘 좌파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그들의 피땀 어린 수고와 헌신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앞으로 가기는커녕 뒷걸음질만 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눈물어린 감동으로 치켜들었던 촛불조차 계급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권력의지를 다지지 못한 것을 보면서 좌절하고 떠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좌파가 역사를 외면하고 계급의 죄인으로 살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중과 호흡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는 계급의 역사가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스스로 돌파구를 열었고, 대중은 스스로 길을 찾았던 것 또한 계급의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좌파는 역사를 믿고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저항의 촛불을 계급의 촛불로, 연대의 촛불을 혁명의 촛불로 전진시키지 못했다고 비관하지말자.
애초에 그런 역사적 상상력에 의지해서 광장에 모인 것은 아니다.
우리사회의 정치의식이나 조직수준이 그 지점에 이르지 못한 것 또한 명백하다.
다만 촛불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역사를 이끄는 힘은 바로 연대와 투쟁이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이제 좌파는 촛불이 계급으로 권력으로 전진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한다.
촛불이 사이비 좌파들을 심판한 현실에서, 좌파는 역사의 필연을 역사의 현실로 바꾸는 역사의 장정을 떠나면서 진정한 계급정당으로 결집해야 할 것이다.
이갑영 /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이갑영 교수의 다른 글입니다.
진보신당은 진보하고 있는가?
[반자본주의 ABC]
진보신당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 정당들에 대한 실망과 함께 ‘자본주의적 귀족’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진보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4월 9일 총선에서는 ‘노심당’이라는 비판도 있었고 전국평균 1.35%와 정당득표 2.94%를 기록해 의회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급하게 꾸려진 정당으로 국고보조금을 받는 수준이 되었으며, ‘지못미’가 나타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원도 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제2창당 문제가 시선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데, 시기와 관련해서는 “천천히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하자는 의견과 “시급히 재창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알지고 있다.
제2창당은 총선이전 진보신당을 만들 때부터 예정된 것이지만 시기문제보다는 ‘진보의 재구성’이 핵심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진보신당을 주도한 분들이 민주노동당을 낡은 진보로 규정하면서 분당을 감행했기 때문에, 진보를 재구성하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념적으로 투쟁을 하기보다 분당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패권주의, 종북주의 그리고 정치적 책임부재 등 진보와 거리가 있는 한계들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처럼 ‘낡은 진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진보’로 우뚝 서려면 진보의 재구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진보를 재구성하려면 과거의 진보정당과 운동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지만 삶의 공간인 자본주의적 생산을 중심에 놓고 사고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파생되는 억압, 착취 그리고 불평등을 뒤로 제쳐놓고 생태, 평화, 인권, 소수자만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사회가 변하고 변화된 가치들을 소중하게 안고가야 하지만 노회찬 상임공동대표가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것을 국가의 주요 노선’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분배를 강조하는 것은 진보의 재구성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단순히 다원주의를 말하고 복지에 집중한다면 진보를 재구성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량진보’라고 고백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 마찬가지로 의회진출의 유혹에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의회에서 다수결을 확보하여 “노동자 서민이 주인 되는 평등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정치적 수사는 ‘도로민주노동당’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진보운동의 역사에서 선거와 투쟁이 분리되지 않았고, 의회진출을 배척한 경우도 없었으며, 선거공간을 외면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의회가 지닌 본질적 한계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이런 지적을 철딱서니 없는 원칙으로만 듣거나 정치적 전략도 없는 공허한 논리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현실은 반자본주의 투쟁을 조직하고 운동을 만들어내는 당을 부르고 있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의 배신자’로 낙인 되면서까지 결별할 때 다짐했던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가져온 폐해를 ‘생태환경과 문화’만으로 대체하는 진보의 재구성은 아니었을 것이며, 의회주의에 빠져 사회운동이나 투쟁과 스스로를 유리하거나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세력들이 대다수인데 이것만 가지고는 온전한 진보정당이 되기 어렵다”면, 자본주의적 생산과 정면에서 맞서고 있는 세력들과 함께해야 한다. 그것은 반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진보를 재구성하고, 선거공간을 투쟁적으로 바라볼 때 여지가 생긴다.
진보신당이 “마지막 진보정당”이 되려면 제2창당은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갑영 /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
|
|
6499
325
8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