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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3 21:43:57
유재운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하종강의 노동과 꿈에서 펌)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하종강 지음, 후마니타스

                                                                                                    정리 박주영

누구보다 치열했던 경쟁률을 뚫고 2004년 KTX열차에 입사한 여승무원들은 비정규직이다.
1년짜리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이들은 자신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급기야 서울역 중앙 로비에서 천막을 펼쳐 농성장을 만들었다.
이미 사회적 화두가 되어버린 비정규직의 문제, 노동의 문제. 그러나 이미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화되기 전, 그 일선에서 꾸준히 ‘노동운동이 희망’이라고 외쳐온 사람이 있다.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 투쟁이 98일째를 맞던 날.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건물 8층, ‘민중의 소리’라는 인터넷방송에서 자신의 방송을 진행하고 나온 하종강을 만났다.


▶ 제목이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니. 최근에 노동운동이 공격받고 있는 정세를 보면 도발적인 제목이다.
노동운동이 위기라고 하고 경총이나 정부에서는 노동운동이 혁신되어야 한다는 공세도 많다.
희망이 노동운동에 있다고 말한 데에는 어떤 낙관이 있을 듯 하다.
희망의 근거는 어디서 나오는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진보를 믿느냐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다.
노동운동은 그 시대의 가장 앞선 운동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뒤로 돌아가”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어떤 친구는 자신이 시대를 가장 앞서가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가장 낡고 가장 변하지 못한 사람 취급당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노동운동이 가장 변해야 하고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취급되는데,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제목은 출판사 사람들과 상의해서 결정한다.
몇 개의 제목을 추려내서 그 중에 결정한 거다(웃음).

지금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질타하는 이야기가 많다.
그게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고 실제로 노동조합의 단점들도 있다.
그러나 그게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은) 노동현장이 집단이기주의적이라고 한다.
집단이기적인 노동조합이 분명 있다.
그러나 그건 소수다.
그런 현상이 전혀 없다는 게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노동자가 비정규직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한다?
그래,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노동운동 전체의 도덕성을 먹칠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동운동에 대해 정상적인 이해가 불가능하도록 말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노동운동이 정상적인 궤도에 올랐던 유럽의 여러 나라, 노동운동이 그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노동운동이 헤게모니를 갖고 있었던 나라에서는 그런 말이 일리가 있다.
노동조합의 힘이 지나치게 커져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그럴 수 있다.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해지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노동조합의 힘이) 그 몇 분의 일도 못 미친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이 지금 10%대다.
무슨 말이냐면, 자기가 (일하고) 얼마를 받아야 되는지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0%밖에 안 되고, 나머지 90%는 그냥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조직된) 10% 중의 절반 정도는 노사화합주의를 표방하는 노조들이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일반적인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 노동조합이 그 중의 절반이다.
그 정도 조직력을 가지고 어떻게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른 나라가 몇 십 년 전에 겪었던 노동자 권리 수준에 미치기도 전에, 즉 정상적인 수준에 가기도 전에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자 권리에 대해 퇴행 현상을 보인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하는 내용이 많다.

노동운동이 왜 옳은 것이냐,
왜 유익한 것이냐 그건 역사가 증명하는 거라 간단히 설명하기 쉽지 않다.
자동차 회사 이사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한 자동차 회사 영업 이사가 말하길, “우리 회사 영업사원이 4천명 넘는다.
그런데, 그 중에 몇 달 동안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하는 무능한 영업사원이 4백 명이나 된다.
그들을 해고해야 마땅한데 노동조합이 그 사람들을 다 지켜주니까 해고를 못하고 있다.
이 사람들을 교육시키려고 했더니 노동조합이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는 교육이라고 반대해서 교육도 못 시키고 있다.
노동조합 때문에 무능한 영업사원 4백 명을 해고도 못하고 교육도 못시키고... 도대체 노동조합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렇게 묻더라.
그 사람은 내가 아무 말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뭐라고 했냐면, “그런데 왜 당신이 생각하기에 백해무익하고 회사 경영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노동조합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럼 저도 설명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배워본 적 있습니까?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지부터 먼저 제대로 공부하시고 그 다음에 질문하십시오” 그랬다.

다른 나라는 이런 내용에 대한 제도권 교육 과정을 이미 다 거쳤다.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역사성을 갖고 있는지. 이걸 다 인식한 뒤에 노동조합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이런 기본적인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노동조합의 문제점만 지적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
이걸 왜 해결해야 하냐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 힘들다.
그리고 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그냥 내버려두면 그것 자체가 사회 발전에 상당히 해롭다.
사회 전체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서도 이걸 해결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경제적으로 유익한 이유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노동조합을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만, 길게 보면,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사회 전체 이익과 반대될 때가 가끔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결과적으로 유익한 측면이 훨씬 많다.
예를 들어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서 경쟁력이 저하된다고 한다.
제조업체가 중국으로 도망간다고도 한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노동비용을 절약하는 것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업들은 별로 유익한 기업이 아니다.
아주 전근대적인 기업 경영이다.
현 단계 우리 경제에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유익한 기업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 향상을 요구하지 않으면 기업은 부가가치 창출로 경쟁할 생각을 안 한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이 가능하면 그걸로 경쟁력을 유지하려 한다.
그게 손쉬우니까... 고부가가치를 생산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선진기업은 그렇게 안 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전교조 교사들이 모여서 참교육운동을 10년 넘게 해왔다.
만약 전교조 교사들이 모여서 임금인상 투쟁을 하더라도 그건 우리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이 나의 기조다.
해로운 측면보다 유익한 측면이 많다.
그런데, 전교조는 계속 10년 넘게 개인들의 복지향상을 위한 투쟁은 거의 안 했다.
참교육을 올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을 했지. 공무원노조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노조도 ‘공직사회 부패를 추방하자’, ‘투명한 공직사회를 만들자’ 이런 걸 했지, 사업내용 중에 공무원의 복리증진을 위한 활동은 거의 없다.
이건 원칙적으로 보면 비정상적인 노동조합이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사회적 대의를 위해 모인 비밀결사투사조직이 아니라 대중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인 조직이다.
교사노조나 공무원노조가 자신의 복리 증진을 위해 싸운다고 해도 그건 우리사회에 해롭지 않다.

전교조, 공무원노조 솔직히 노동조합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제도권 교육과정에서 이러한 노동조합의 역할을 다 배운다.
자본주의 사회가 설립되고 200년이 지나는 역사에서 노동조합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그 기본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노동조합의 안 좋은 모습만 폭로되면 사람들이 굉장히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노동운동 전체의 정당성을 이해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것만 수용하는 거다.

결국 노동조합이란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이 수천 년 동안 자신의 권리를 확대해온 과정이다.
노예제도가 철폐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인류 역사의 진행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이 우리 생각에는 위대한 철학자지만, 그 둘의 공통점은 노예가 인간이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니까 병든 노예는 죽여도 죄악이 아니라 고장 난 도구를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 철학에 기초해서 귀족들은 노예를 죽였다.
아무 죄의식없이... 그게 그 당시를 지배했던 철학자들의 이념이었다.
그런데 그때에도 “노예도 인간이니까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런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겠나?
그 사람들은 죽임 당했고 감옥에 갇혔지만, 역사가 심판한다는 게 이런 거다.
결국 누구의 생각이 옳았는가?

노동자가 점점 더 조금씩 일하면서 점점 더 잘 사는 방향으로.., 조금씩 더 게을러지면서도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역사가 발전해 온 거다.
우리 사회에서 주5일 근무가 공론화된 게 2004년인데, 당시 방송에 여러 차례 나가서 주5일 근무제를 설명했다.
어떤 방송에 나가서 주5일근무제를 설명했다.
“정확한 표현은 주40시간 노동제다.
6법전서 어디에도 주5일근무제라는 표현은 없다.
지금 사람들 하루 기준 노동시간이 8시간이니까 1주일 노동시간이 40시간으로 단축되면 5×8=40, 즉 직장인들이 일주일에 5일만 출근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5일제다,
노사정 합의에 의해서 근로기준법의 굉장히 중요한 조항이 명시됐는데 임금 수준은 낮출 수 없다는 거다.
노동시간은 단축되고 출근 날짜는 줄어들지만 임금 수준은 낮출 수 없다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방송 사이에 광고가 나갈 때,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방송사 아나운서가 됐다는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럼 노동자들이 일은 적게 하고 돈은 그대로 받겠다는데, 그게 도둑놈 심보 아닌가요?”
주5일 근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구성원들에게 왜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상상을 못한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1학년 사회과 교과서를 보자.
1/3정도가 노동문제다.
이런 토론주제가 있다.
“주 35시간이 왜 진보인가?”
프랑스 노동시간이 주당 35시간이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게으르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걸 왜 역사의 진보로 보는가?
제도권 교육에서 그런 내용에 대해 충분히 학습하고 토론한다.

노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노동조합을 이해하고 있는 거다.
내가 하는 일은 무슨 노동해방 세상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엄청나게 비정상적인 사회를 다른 나라 몇 분의 일 수준으로 좀 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만들어보자는 거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과격하다는 말을 듣는 거다.


▶ 아까 질문의 반대편에서 던지는 질문도 있다.
‘노동운동만 있냐?
여성운동, 장애인운동, 소수자운동이 오히려 지금은 더 주목되어야 할 운동 아닌가?’라는 지적도 있을 텐데?

나도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처음 조직되었을 때, 그 단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여성 선배한테 그랬다.
“아니, 지금 인간해방도 안 된 마당인데, 여성해방을 먼저 하겠다는 거예요?” 농담으로 그랬더니 그 분 하는 말. “이렇게 무식한 놈은 처음 봤다”고 하면서 “너, 노동문제가 역사적 과제라고 생각하지? 여성문제는 초역사적인 과제야! 이 바보 같은 놈아!” 그랬다(웃음).
그때 그 선배 하는 말이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낫다는 놈이 이 모양인 거야”

운동의 다양성 인정한다

지금은 운동의 다양성을 다 인정한다.
나는 그게 자본의 다양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장애인은 장애인으로서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자본의 다양한 공격을 받고 있는 거다.
나는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공격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이미 쇠퇴했으니까 의미가 없고 이제는 시민운동이 훨씬 더 중요한 운동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아니다.
노동운동이 최정점에 달했다가 쇠락한 다음에는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노동조합이 아직 정상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다.
공무원노조, 다른 나라가 몇 십 년 전에 다 만들었던 거다.
우리가 지금 몇 십 년 뒤에 따라가고 있는 건데, 그런 상황에서 노조의 폐해를 주로 지적하는 건 우리 사회에 이익보다 손해를 훨씬 더 많이 끼친다.


▶ 교육을 굉장히 많이 다니고 있다.

교육만 주로 한 지는 얼마 안 됐다.
노동교육을 처음 시작한 건 1980년도 9월에 노동자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 때는 교육을 이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명색이 연구소 소장(하종강은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기도 하다)이니까 연구도 해야 되고 상담도 해야 되고... 연구, 교육, 상담 이 세 가지가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교육이 너무 많아져서 ‘연구소장’이 연구 못한 지 꽤 됐다.
교육이 이렇게 많아진 건 아마 5~6년 정도 되는 것 같다.


▶ 교육하는 활동가들을 양성할 계획은 없나?
교육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생겨야 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 듯한데...

정태인 씨와 친하게 지내는데, 그걸 지적하더라.
“난 형이 박정희랑 똑같다고 생각해, 교육은 형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형이 그거 안 한다고 세상이 안 돌아갈 줄 알아?
형 같은 사람을 양성해, 혼자 다니지 말고.” 나처럼 교육 많이 하던 사람 중에 박준성 씨라고 있는데, 얼마 전에 간암 투병을 했고 지금은 완치됐다.
박준성 씨가 간암 진단 받았을 때도 말하더라. “나처럼 되지 말고 빨리 정신 차려라.
혼자 다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사실 내가 교육하는 사람들을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건 내가 키워서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커야 하는 거다.
제도권 교육처럼 획일화된 교육 프로그램 속에서는 사람들을 키울 수 없다.
‘교육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묻는 사람도 많고 ‘교육역량 강화 교육’, ‘강사 교육’ 등도 며칠씩 한다.
그러면, 그 교육에 참여한 사람이 며칠 동안에 많이 달라지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계속 교육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후배 양성은 아마 영원히 못할 것

예를 들어보자.
내가 KTX 여승무원 들을 만난다.
내일은 그들이 정규직화 싸움을 시작한 지 99일째고, 모레는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들은 99일을 싸운 사람들이고 나는 그 싸움을 하루도 안 했다.
그런데 99일 투쟁하지도 않은 사람이, 자기가 겪지도 않은 고통을 갖고  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일하다가 팔 잘려 본 경험이 없는데, 일하다가 손가락 잘리고 화상 당하고 팔 잘린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모두 내가 겪을 수는 없다.
그럼 무엇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나?
내가 여태 살아온 모든 것을 다 거기에 걸어야 하는 거다.
50년 인생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성찰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교육을 하는 사람은 그냥 지식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사람들이 노동법을 공부하고 싶다면 노동법 책을 보면 되지, 왜 나를 부르겠나?
내가 해고된 노동자들이 있는 데 가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나는 해고당해 본 적이 없다.
아, 사실은 운동단체에서 두 번 당해 본 적은 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려면 인생에 대한 성찰과 삶의 철학이 어느 정도는 되야 한다.
그건 쉽게 감당할 수가 없다.
누가 가르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그래서 교육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첫 번째로 ‘교육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라’고 한다.
그 욕망을 버리고, ‘이 바쁘고 힘들게 살면서 짬을 내 와 준 사람들에게, 정해진 시간 안에 어떻게 하면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전할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하라고 한다.
그거 외에 다른 욕망이 앞서면 그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다 보인다.
그건 사람들이 다 느끼는 거다.
아마 다른 누구를 키우는 건 내가 영원히 못할 것 같다.


▶ 조직운동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안다.
지금은 조직 이름으로 활동하는 게 있나?

지금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이 100일째를 맞으면서 ‘500인 동조단식’과 ‘1000인 지지서명’을 신청 받고 있다.
철도노조에 전화해서 나 거기 끼워달라고 했다.
나는 조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빠지는 경우가 많다.
비합법 활동하던 시절, 조직에서 후배를 제명하거나 나도 제명에 거의 준하는 조치를 당한 적이 있다.
10년 넘게 조직 활동에 참여하면서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거다.
그래서 나는 시골 농공단지 허름한 비닐하우스 같은 작은 공장에서 조합원 열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노조에서 활동하는 노동조합 간부들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는 포기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지금도 조직의 직함은 없다.

조직사업 하는 활동가를 존경하는 이유

조직이 왜 어렵냐?
한번은 공무원노조에 갔다.
군청에서 일하는 조합원 9명이 해고당하고 노조사무실을 빼앗겼다.
9명이 군청 복도에서 철야농성을 하면서 노조사무실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했다.
며칠 싸우고 나니, 군청에서 타협안을 제시했다.
“꼭 회사 안에 노조사무실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지 않냐? 군청 건너편 상가에 마련해주겠다.
그럼 해고자들 당신들도 드나들기에 더 부담 없지 않냐?” 그랬더니, 조합원 9명이 5대 4로 의견이 나뉜 거다.
“절반의 승리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견과 “어렵고 복잡할수록 원칙대로 하자. 끝까지 싸우자”는 의견. 그래서 자기네들끼리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렇게 힘들었다는 거다.
군수하고 싸우는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거다.
조직은 그렇게 어렵다.
그래도 그 과정은 어쩔 수없이 겪어야 하는 거다.
그 과정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발전을 한다.
그걸 누군가는 해야 되는 중요한 일인데 나는 감당을 못하겠더라.


▶ 지난 5. 31지방선거에서는 어느 당을 지지했나?

나는 공개적으로 "자나 깨나, 죽으나 사나 민주노동당"이다.
혹자들은 그렇게 말하는 내가 부럽다고도 하지만... 민주노동당 표가 사표가 되어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길게 보면 그것이 사회 발전에, 진보에 기여한다.


▶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유명할 일화가 있다. 뒷이야기들이 없었나?

그 생각을 하면 박원순 변호사한테 참 미안한데, 내가 원했던 그 말 한마디를 끝내 안 하신 건 참 섭섭했다.
그렇지만, 그분의 진심이 노동운동을 폄하하는 건 아닐 거라 생각한다.
‘노동운동은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의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시민운동의 선배로서 노동운동도 참 중요합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그렇게 한 마디만 해달라 했는데 끝내 안하더라.


▶ 그 후에 주위에서 시민운동에 대한 질문이나 입장을 요구받은 적이 있나?

가끔 받는다.
그런데 그 날은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확실한 개념 정립이나 문제점 제기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날 거기 있었던 수십 명은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거나, 노동조합 간부가 아니어도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었다.
그런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장소인데, 그들이 거기서 두 시간 내내 패배감에 시달렸다.
한동안 우리 운동이 힘들겠구나, 우리가 올바로 못하고 있구나… 하는 패배감. 거기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끝낼 수는 없겠다 싶어서 마지막에 내가 질문을 한 거였다.

시민운동, 존중한다

내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은 없다.
시민운동, 굉장히 중요하고 그 다양성을 존중한다.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폭넓은 다양성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현재 가장 강한 적과 싸우고 있다.
노동운동에 대한 혐오감이 시민운동에 대한 혐오감보다 훨씬 높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시민운동을 악의적으로 선전하는 세력보다 노동운동을 악의적으로 선전하는 세력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재벌들이 시민운동에 왜 기부금을 내겠나?
노동운동을 절대로 지원하지 않는 사람들, 그 똑똑한 사람들이 판세를 정확하게 읽는 거다.
시민운동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훌륭한 운동이긴 하지만, 가장 강한 적과 싸우고 사회 부조리를 바꾸는 측면은 노동운동보다 아직은 많이 약하다.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노력으로 사회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라고 보는 건 옳지 않다.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은 백 년 전의 낡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감히 인간이 사회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헛된 꿈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노동운동을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다는 거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회를 보다 평등한 구조로 바꾸는 게 필요하고, 거기에서는 노동운동이 시민운동보다 결코 중요성이 덜하지 않다.
가장 강한 적과 맞서는 운동, 자본보다 더 큰 세력이 어디 있나, 이 사회에...


▶ 최근에 강의한 내용은 어떤 내용이었나?

어제는 전태일 열사의 후예들이라고 이야기되는 봉제 노동자들을 만났다.
‘의류업살리기 공동본부’라는 곳과 ‘청계피복노조’의 전통을 이어 받은 ‘서울의류업노동조합’ 사람들을 같이 만났다.
사실 봉제가 부가가치가 굉장히 높은 기술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루치아노 최’라는 사업장을 보자.
그 곳의 옷은 한 벌에 몇 백만 원짜리다.
그게 한 벌에 원가가 사실 얼마나 되겠나?
그런데 한 벌의 옷감을 자기 손으로 재봉해서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짜리 옷을 만들어내는 거다. 그런데도 봉제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어제는 그 봉제노동자들만 모인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10명, 20명 고용하고 있는 하청업체 사장들도 같이 모였다.
하청업체 사장들도 다 20~30년씩 봉제한 사람들이다.
그리고는 물건 따다가 같이 사업하는 거다.
그 사람들도 굉장히 어려운데, 말하자면 하청업체 사장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함께 교육하느라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노동문제’라는 용어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럽다고 해서 주제를 ‘한국사회 노사관계 바로보기’라고 정했다.
‘지금까지 노동문제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다’ 그런 의심을 품어보자,
이런 기조로 이야기했다.
나는 특별히 대단한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전근대적인지 그런 것들을 설명할 뿐이다.  


▶ 강의 후에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떤 건가?

“요즘 비정규직 노동자가 엄청나게 고통 받고 있다.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대기업 노동자의 파업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는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게 어떻게 정당한가?” 그런 질문들이다.
그런 건 각각 설명하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
지난번에 굉장히 학력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였다.
방송사 노동조합이 생겨나면서 우리나라 방송이 얼마나 공정해졌는지 설명했다.
우리나라에 방송사 노조가 없었다면 우리가 보지 못한 프램그램들이 많았을 거다.
이 방송사 노조들이 경영진과 싸워가면서 만든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얘기들을 했다.

인간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병원노조의 파업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나

선진국을 보면 판사노동조합, 변호사노동조합도 있다.
판사들이 왜 노조 만들겠나?
우리나라 판사들 중에서도 굉장히 진보적인 판결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나올 때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선고하는 판사, 불법파업으로 구속된 노동조합 간부에게 인사권 경영권도 단체교섭 대상사항이라고 무죄 선고해주는 판사, 기소된 공무원노조 간부 23명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함으로써 처벌하지 않겠다는 판사. 굉장히 진보적인 판사들이 가끔 나오지만 이 판사들이 법원 인사이동에서 어떻게 되겠나?
옷 벗고 퇴직하거나 시골 법원으로 좌천되기 십상이다.
판사들이 판사로서 꿈꿨던 보람 있는 인생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니까 똑똑하고 정의로운 판사들부터 노동조합 깃발 아래로 모이게 되는 거다.
학생들을 사랑한 나머지 해직당할 각오를 한 정의로운 교사들부터 전교조 깃발 아래 모인 것과 똑 같은 거다.
노동조합 가입하면 해직당할 거 알면서도 가입했고 탈퇴서에 이름 석 자만 쓰면 해직당하지 않는다고 교장 선생이 닦달을 해도 탈퇴서에 이름 석자 쓰지 않고 해직당한 교사가 1500명이 넘었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좀 더 정의로운 판사들부터 노동조합 깃발아래 모이는 건데, 그 판사노조 활동이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나?
판결의 내용을 점점 공정하게 바꿔가는 거 아닌가?
전교조활동을 통해 촌지가 없어지듯이.

우리사회에 노동조합이 이렇게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고 열심히 설명했더니, 첫눈에 보기에도 정말 많이 배우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번쩍 손들고는 이렇게 질문한다.
“그럼,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 노동자가 파업하는 건 어떻게 정당할 수 있습니까?”
그거 제대로 설명하자면 너무 길다.
나는 딱 한마디만 했다.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을 통해서 당신이 만약 아주 가난해져도 부자와 똑같이 진료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질 겁니다.
선진국에 공공의료가 확보되고 무상의료가 실시된 것이 모두 그런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가능해진 겁니다”
이런 것들이 기본적인 지식이고 그 다음에 노동조합의 시행착오를 말해야 하는 거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으로 일류기업이 된 것은 사실 아닌가?

혹자는 이런 질문도 한다.
“삼성이 무노조경영으로 일류기업이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그건 거꾸로다.
삼성이 일류기업이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무노조 경영이 가능할 뿐이다.
삼성은 다른 동종기업 노사교섭이 끝나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다른 회사 협상 결과보다 조금 더 준다.
결국 삼성 노동자는 다른 노동조합의 혜택을 보는 거다.
지금까지 삼성 관련 회사에 노조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 자신이 일류라는 환상이 깨졌을 때다.
신세계백화점에 노동조합 만들어졌을 때도 보자.
IMF 외환위기 당시, 미도파 백화점도 임금체불이 없었는데, 신세계는 상여금이 안 나왔다.
그래서, 신세계 백화점 노동자들은 ‘우리가 일류가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곧바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일류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삼성의 무노조경영은 복수노조가 합법화되는 순간 바로 깨질 수밖에 없다.
삼성이 무노조라서 일류가 된 게 아니다.


▶ 교육하는 과정이 어려운 과정이므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인내와 고통이 필요할 텐데?

처음 노동조합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노동자의 정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노동자의 수기들을 다 모았다.
그걸 주제 별로 정리했다.
노동자들이 ‘고향’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자.
자기가 떠나오던 추억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의 농촌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의식 수준에 따라 그렇게 다르다.
노동조합이란 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있고, 한번쯤 들어본 사람도 있고, 노동조합에 일생을 건 사람도 있다.
노동자의 의식 수준에 따라서 똑같은 사물에 대해서 노동자가 느끼는 게 다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수기들을 모아서 다 오렸다.
대학노트에 초보적 의식 단계 수준, 직업적인 운동가 수준의 노동자들이 이해하는 수기 내용을 다 주제 별로 오려서 모아두었다.
노동자 정서에 익숙해지기 위한 그 과정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겪지 못한 일을, 겪은 사람 앞에서 말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거다.
그걸 한 2년쯤 했더니 겪어보지 못한 노동자들의 생각에 대해서 제법 이야기하게 된 거다.

나는 겪지 못한 일을 이미 겪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조폐공사 노조 위원장 단식할 때, “며칠 째야?” 묻고 나서는 23일째인거 알게 된 뒤에 아무 소리 못했다.
그러나 옆에 앉았던 한국타이어의 해고 노동자가 하는 말이 “요즘 23일 굶어가지군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어. 36일은 굶어야지” 그 사람은 그 농담할 자격이 있다.
자기를 해고한 회사 앞에 천막치고 그만큼 단식했으니까... 자기는 복직되지 못했지만 다른 동료들 복직시키면서 그 싸움을 끝냈으니까... 그 농담 한마디를 그 사람은 하지만, 난 할 수 없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당하는 노동자 앞에 설 때마다 항상 내가 가진 자격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항상 그런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 교육이 가르치는 과정이기도 하겠으나,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겠다.
  
그런 사례는 너무 많다.
한번은 강원도 삼척 작은 광산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광부가 20명밖에 안 되는 작은 광산인데, 관리직이 10명이 넘는다.
그러니까 관리직들이 땅 파는 광부들 등쳐먹고 사는 그런 회사인데, 여기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었다.
노동조합을 회사가 인정 안하니까 사무실이라고 회사 밖에 마련했는데, 산 중턱 폐가에 현판이 붙어있었다.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다 쓰러져 가는 집에 ‘민주노총...’ 뭐라고 현판이 붙어있는데, 보자마자 목이 콱 잠기더라.
광부들 20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곳에서 교육을 했는데 강연 첫마디를 뭐라 했냐면 “아유, 7시간 반이나 걸렸네요.”라고 했다.
서울에서 거기까지...

듣고 있던 광부 중 한 사람이 “그래도 다 사람 사는 뎁니다” 하더라.
나는 내가 7시간 반 걸려 왔다는 걸 공치사한 거다.
‘두 시간 강의하고는 또 7시간 반 동안 가야 한다’, 그걸 자랑삼아서 이야기한 거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한 평생 살아가는 사람의 자격지심을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거다.
그런 부끄러운 경험을 통해서 항상 배운다.  

또 한 번은 오산에 있는 목사님 부부가 운영하는 공부방이 있다.
그 곳의 초등학생, 중학생 대상으로 노동문제 설명할 수 있겠냐고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갔는데, 도저히 통제가 안 되니까 초등학생 저학년은 할 수 없이 내보냈다.
그리고 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1~3학년 한 열댓 명 있는데서 두 시간 열심히 교육을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이런 표현을 세 번 했다.
“여러분의 부모님처럼 땀 흘려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나라가 좋은 나라입니다.”

그 뒤 공부방 선생님이 이메일을 보냈다.
‘강의 참 훌륭했습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보니까 이렇다고 하더군요.’
이런 칭찬을 앞에 하고 나더니, “어제 강의 들은 열여섯 명의 아이들 중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는 6명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에도 부모가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아이는 한 가정밖에 없었다는 거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부모에 대한 상상조차 안 되는 아이들이었던 거다.
내가 예전에 도시빈민활동 해봤다고, 어려운 동네라고 알고 갔는데, 그 정도일거라고는 상상을 못한 거다.
그 아이들은 ‘아버지’ 하면, 술 먹고 들어와서 때리는 사람, ‘어머니’는 그걸 또 못 이겨 도망간 사람, 이런 이미지가 가득 찬 아이들이었던 거다,
‘땀 흘려 일하는 부모님’에 대한 상상조차 불가능한 아이들 앞에서 그게 얼마나 멋쩍은 일인가? 나는 그런 부끄러움을 통해서 배우는 거다.

꿈이 뭐냐고, 희망이 뭐냐고,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삼척 전교조 교사 아카데미에 가서 삼척 광부들 이야기를 했다.
‘내가 5년 전 겪은 그 일 때문에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항상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 말을 했다. 그랬더니, 강의 다 끝나고 나서 한 노동자가 오더라.
“선생님, 5년 전에 그 작은 방에 제가 있었거든요.” 그 광산노조 간부들 3명이 전교조 강의 포스터를 보고 날 만나겠다고 온 거다.
전교조 교사들만 대상으로 하는 강의인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 그동안 열심히 해서 휴게실도 생겼고요, 샤워실도 생겼어요.”라고 한다.
노동조합 활동 몇 년 해서 휴게실 생기고 샤워실 생긴 게 광부들의 자랑인 거다.
“다른 광산 노동자들이 굉장히 부러워해요” 그러더라. 아직도 그런 세상이다.

사람들이 나보고 꿈이 뭐냐고, 희망이 뭐냐고,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그저 지금처럼 활동했으면 좋겠다.
지금 하는 일을 나이 80이 넘도록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이다.





   이놈의 투쟁 후회 없이 해보자.

부지매
2006/08/15

   전비연에서 알고는 있었나요? [1]

비정규
200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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