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요구를 하는 파업이 아니다.
단지 입에 풀칠 좀 하고싶다는 파업이다.
화물연대의 화물운전자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경유값은 계속 오르는데, 운송비는 그대로거나 심지어는 더 내려갔다.
기업으로 치자면 원자재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데, 제품 가격은 점점 내려간다.
방법은 무엇일까?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정부가 개입하여 보전해주든지, 제품가격을 올려야 한다.
왜? 먹고 살아야하니까.
그런데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운송비를 자기들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기업이 화물을 안 주면 쫄쫄 굶어야하니까.
그래서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그런데,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생겨난다.
파업을 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한다면, 먹고 살기 좀 나아지겠지만 아주 적은 이득을 보더라도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도 있는 것이다.
이들은 파업을 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파업 미 참여 노동자들에 대한 테러>가 빈번하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부터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버스타려면 30분은 걸어나가야 하는 시골마을이다.
여느 시골마을이 그러하듯, 인구구조는 어린이들은 별로 없고, 젊은이들도 많지않고 주로 노인들이 많은 구조이다.
그것도 할아버지들은 별로 없고 주로 할머니들이 많다.
언제부턴가 농사짓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논이 있던 자리에 공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동네에 있는 공장에서 나오는 부업으로 소일거리를 삼았다.
볼트와 너트 조립하기, 수도꼭지부속 조립하기 등 간단하고 단순한 작업이었는데,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서 앉아서 수다 떠는 것보다 개당 5원 ,10원 하는 부업으로 용돈 벌이 하는 것도 꽤 쏠쏠한 일 이었을 것이다.
그 부업을 생계형으로 생각하는 할머니는 없었던 것 같았다.
그저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서울가서 사는 손주가 오면 용돈이라도 쥐어줄 심산으로 "심심풀이"용 이었던 것 같았다.
자식들이 용돈도 모자라지 않게 주는데, 돈을 벌 목적은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나이 70-80 먹어도 일할 수 있으면 해야지, 나이 먹었다고 일 안하는 것도 너무 심심해"
나도 집에 내려가는 주말이 되면, 마을회관에 가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 부업을 도와드렸다. 나이 80이 넘으셔도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없는데, 그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부업인 것 같다.
작업량을 스스로 계산해야 하는데, 우리 할머니의 경우도 밤마다 "그저께는 500개 했고 어제는600개 했고~" 하는식으로 끊임없이 두뇌회전을 하셨다.
어느날 집에 내려가서 마을회관에 갔는데, 부업을 하시는 할머니들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개당 5원 하는 수도꼭지부속 조립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는데, 아무리 노인네들 부업하는 것이지만 너무 싸다는 게 할머니들의 주장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싸긴해도 일거리를 주는게 어디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들께, "그럼 5원만 올려달라고 하는게 어때요?" 라고 제안했다.
"5원 올려달라고 해서 안 올려주면 일 못하겠다고 하면 올려줄 거 같은데" 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의견이 파업 쪽으로 정해졌다.
졸지에 내가 파업의 '주동자' 이자 '배후'가 된 것이었다.
할머니들은 대표를 선출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60대 후반인 호철이할머니가 대표로 공장에 전화를 걸어 "단가를 5원 올려주지 않으면 일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할머니들은 공장 측에서 단가 인상 소식이 올 때 까지는 작업을 하지 않겠다는 '자율결의'를 했다.
그 날 이후, 파업의 배후가 된 나는 매일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파업 진행상황을 체크했다.
공장 측에서는 5원 올려주는 것이 힘들다고 했고, 할머니들은 계속 파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어느날 마을회관 창고에 쌓아놓은 수도꼭지 부속이 점점 없어지더라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자식없이 노부부만 사는 집의 할머니가 공장측의 소식이 올 때까지 작업을 중단하자는 '자율결의'를 어기고 혼자서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대다수의 할머니들에게는 용돈벌이 였지만, '자율결의'를 어긴 할머니에게는 용돈벌이 이상의 부업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어떤 할머니도 '자율결의'를 어긴 할머니들 욕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공장 측에 더 강력히 요구해야한다고 할머니들은 생각했고, 그렇게 파업을 진행했다.
결국, 공장 측은 할머니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개당 단가를 10원으로 올려줬다.
내가 '선동'하고 '배후'였던 첫번째 파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사건이었다.
화물연대 파업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정치파업'이 아닌 '생계형파업'이라서 더 그렇다.
노동자들이 더 단결하고 통일된 행동을 해야하지만, 각 개인의 사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파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보복을 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화물연대의 일부 과격노동자들은 이 점을 명심해줬으면한다.
아울러, 우리 동네 할머니들의 건강과 화물연대 파업의 성공을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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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할머니들의 파업이야기 : 화물연대 파업을 생각하며(달구-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