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시사미디어 기사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기 획 | 노동의 그늘<특수고용직 법률의 함정>]
11차에 걸친 노사정 실무회담 협상이 아직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협상 중에 인권위의 권고안이 나오면서 노사정 실무회담은 노동계는 물론 전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되었다.
노동계는 임시직계약직 고용사유 제한과 중간착취·고용불안을 야기하는 파견법 폐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최저임금 현실화와 특수고용직의 노동3권 보장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양대 노총 위원장이 열흘이 넘는 단식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난해 보호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에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했다가 위원회 활동시한의 연기로 올해로 넘어왔던 특수고용직 문제가 이번 법안에서도 제외되면서 관련 근로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은 1999년 11월에 있었던 재능교사 노동조합 설립투쟁을 계기로 처음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해 계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다. 이후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조합을 비롯해 레미콘 기사의 건설운송노조, 보험모집인노조, 학습지산업노조 등이 설립됐으며,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는 80여만 명에 달해 전체 노동자의 5.6%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자로서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2003년 1월 10일 대법원 1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은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법원은 “(주)씨케이인프라시스 소속 레미콘기사들이 근로자의 지위에 있지 않음을 확인해 달라”는 회사측의 ‘근로자지위 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회사)에 대하여 종속적인 고용관계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는 원고의 근로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해 행정법원, 고등법원에 이어 사측에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어느 정도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며, 레미콘 운송차량의 소유권이 운송차주들에게 있고, 운송차주들이 각자 사업자등록을 하여 사업소득세 및 부가가치세를 납부한 점,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져 있지 아니한 점” 등을 이유로 건설운송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인한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자살, 부당해고, 부상 등의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결국 노동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게 돼 이들의 불만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노동3권의 사각지대
특수고용직은 문민정부가 고용 유연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구고조정의 핵심이었다. 현재 특수고용직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 등록을 내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자로 전환시켜 노동계약을 맺지 않고 일을 시키는 고용 형태로 이전에는 정규직이었으나 회사측이 경영 및 노무관리의 필요성에 따라 구조조정을 하면서 특수고용으로 전환시킨 것이 대부분이다.
보통 노동자들과는 달리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회사가 직접 지불해야 했던 임금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급함으로써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성을 보장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근로기법 상으로는 임금을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지불하는가가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A라는 학습지 회사가 학습지 교사들을 직접 고용해 월급을 주는 형식이었는데, 이제는 학습지 교사들이 얼마만큼 계약을 따내는가에 따라, 학부모들이 지불한 학습지 회비 중 일부를 직접 학습지 교사들의 몫(월급)으로 전달되도록 하면 그에 따라 학습지 교사들은 법률상으로는 회사를 통해 임금을 지급받는 것이 아니게 되고, 학습지 회사-학습지 교사간의 고용 관계가 은폐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혹독한 노동 조건에 대해 항의하고자 해도 사측에서는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라고 으름장을 놓을 여지도 생기는 것이고, 법률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측으로써는 4대보험, 산재 처리 등 복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몇 년짜리 계약직으로 고용되기 때문에 일을 시키다가 마음에 안 들거나,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마음대로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작업방법이나 근무형태 정규직과 동일
그러나 이들이 실질적으로는 정해진 사업장에서 일정한 기간동안 임금을 지급 받으며 생활한다는 점으로부터 근로기준법 제14조에 규정되어 있는 ‘근로자’의 정의와 부합하는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다. 여기에 현행 법 규정상의 맹점이 자리하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개인 사업자’라는 명문적 규정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 조건과는 괴리가 있다.
사실 학습지 교사,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들은 정해진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동안의 임금을 지급 받으며, 그 사업장의 사규와 근로 지시에 종속된 채 생활하고 있는 일반 노동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단지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 때문에 근로기준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사각 지대에 놓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4대보험 적용에서 배제돼 법정수당, 휴일·휴가, 고용보장, 모성보호, 산업재해, 퇴직금, 실업수당 등을 전혀 받지 못하고, 노동조합 설립 및 단체교섭, 단체행동권의 행사에도 제한을 받는다.
이광택 국민대 교수(법학)는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 1호에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의 범위를 시행령으로 구체화함으로써 특수고용노동자를 이 정의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노조법 시행령에 ‘외형상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특정 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를 명시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은 이처럼 개선의 기미 없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관련 법안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가 빠진 점은 두고두고 노사정간 갈등의 불씨를 만들고 있다. 덤프연대 노동자들은 5월1일부터 생존권과 노동기본권 미보장에 “차라리 다 죽여라”며 무기한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이는 줄줄이 이어질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의 서막이다.
이 같은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노동자들의 희생과 인고를 기대할 게 아니라 사회안전망의 정비와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
<박스>
사례1
“우리는 아이들은 가르치는 교사지 영업사원이 아닙니다.”
지난 5월 6일 한솔교육 동부지점 사옥 앞에서 부당해고자의 복직을 촉구하는 시위현장에서 만난 김미경씨(한솔교육 일반노조 부위원장). 김씨는 한솔교육 동부지점에서 근무하다 작년 11월 3일자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엄연히 판매부서가 있음에도 학습지 교사들에게 회원 늘리기와 교구 및 교재판매 등을 강요해 가짜 회원을 만들고 자기 돈으로 회비로 채워 넣는 일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례다. 그런데 최근 한솔교육 측에서 회원들의 교육비는 올리면서 교사들에 대한 수수료는 삭감했다. 사측의 부당 대우에 반발하여 교사들이 노조결성에 나서자 노조의 지도부였던 김씨는 사측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후 김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해 승소판결을 받아놓은 상태다.
“회사는 우리가 특수고용직인 점을 악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일반 노동자들과 똑같은, 아니 더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노조의 조합원이 200명을 넘게 되자 회사는 공공연하게 계약해지를 경고하면서 노조탈퇴를 종용했습니다. 곧 계약 갱신이 기간이 다가오는 다른 교사들에게 나 같은 선례를 보여주면서 겁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사례2
“사업자로서 우리가 하는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레미콘 운송 기사들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모두 건설 회사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도급 전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해고하겠다는 회사의 협박에 떠밀려 차량을 불하(拂下 회사에 소속된 것을 개인에게 팔아 넘기는 일)받게 된다. 이렇게 되자 차량 운영에 따른 각종 세금, 공과금, 수리비용 등은 모조리 운송 기사의 부담이 되었다.
레미콘 기사 경력 17년 차인 이영세씨는“사업을 한다면 뭔가 내가 노력해서 수입이 되는게 있어야 되잖아요. 우리가 다니면서 물량을 확보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해 놓은 걸 우리는 운반만 하는거니까 사업성이 전혀 없는거죠. 아침출근시간도 정해져 있고, 결근, 지각, 조퇴 등도 미리 통보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회사에서 기사대기실에 ‘만약 무단결근하면 다음날 배차에 불이익을 주겠다’라는 문구를 적어놨더라구요”라며 회사와 사업자대 사업자의 계약관계지만 고용관계의 통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사례3
“회사의 요구로 하게되는 잘못, 책임은 결국 우리가 집니다.”
덤프노동자들은 보통 45일에서 60일 간의 업무가 끝나기 전엔 급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덤프트럭을 운행하기 위한 차량유지비 및 기름값, 보험료 등을 선투자 해야한다. 그런데 이른바 ‘대마’라고 하는 작업중단 명령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돈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상황이 되버린다. 실제로 덤프노동자 대부분이 3천만원이 넘는 부채에 시달리며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고 있고, 일하는 시간이 하루 10시간이 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115주년 노동절행사 현장의 한 덤프트럭운송노동자는 “실질적으로 과적은 건설회사에서 운송비를 줄이기 위해 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며 이를 어길 시 업무배정에서 제외될 수 있기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과적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적발되면 우리만 책임져야하고, 차량마모도 심하고, 기름도 많이드는데 우리가 뭐하러 나서서 과적을 하겠냐”며 과적의 책임을 덤프트럭운송노동자에게만 묻는 현 과적단속제도를 비판했다.
허은희 기자 heh@sisamedia.or.kr |
|
|
6499
325
19
[펌]시사미디어기사 <특수고용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