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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7 10:40:23
류재운
마이클 무어의 신작 "사회주의 좀 하면 안돼" [오마이 뉴스 펌]
또 하나의 걸작,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뉴욕시사회

마이클 무어, 캐피탈리즘, 자본주의

언어는 기묘한 것이다.
이 말을 읊어보자. '자본주의.
' 이번에는 천천히, 또박또박 네 글자를 말해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한 느낌이 몰려올 것이다.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은 불경함, '과격한 사상'을 가진 이나 떠올릴 '남의 언어'를 입에 문 어색함, 감히 도전해서는 안 될 법과 질서에 저항하는 듯한 무례한 느낌.

어떤 대상에 궁극적 권위를 부여하는 방법은 그것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말과 생각에 담아서는 안 되는 금기로, 주목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무엇을 말하는 순간 이것은 비교할 수 있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는 실체적 대상이 된다.

  
  
▲ 마이클 무어의 새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포스터. 10월 2일부터 미국 전역에 상영된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자본주의', 뻔한 제목을 고른 이유



마이클 무어가 2년 만에 새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10월 2일 미국 전국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자본주의: 러브스토리>가 그것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9/11>, <식코>처럼 재치 있고 함축적인 제목을 즐겨 쓰던 감독치고는 의외의 선택이라 할만하다.
대체 무엇을 노리고 이처럼 '뻔한' 제목을 고른 것일까?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말이 미국사회에서 갖는 금기의 강도가 한국만큼이나 강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믿어 온 '자본주의 최면'에서 깨우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숭고한 가치도, 유일한 체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무어의 내레이션에 따르면 제목은 "자본주의와의 불장난(a big love affair with capitalism)"이라는 뜻이다.

유럽 사람들이라면 하품을 할 만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전하기 위해 꼬박 2년을 들여 영화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러나 부통령후보였던 사람이 연단에 올라 태연히 "오바마는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걷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겠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하자는 건가요?" 라고 말하거나, 그의 지지자들이 흥분해서 '우리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나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 미국뿐인가.
살벌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한국 대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자본주의는 경제체제고,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영미인들도 모르는 영문법을 줄줄이 꿰고, 외국에서는 대학원생조차 진땀을 흘릴 미적분을 척척 풀던 학생들이 말이다.

우리에게 '자본주의면서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와 '자본주의가 아니면서 민주주의인 나라'를 말하라고 하면 몇 나라나 꼽을 수 있을까?
정치인 이야기는 빼도록 하자. 우리는 제법 머리를 쓰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자본주의>는 마이클 무어의 20년 작품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를 갖는다.
무어는 자본주의가 다수를 불행하게 만들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 받은 월가를 찾은 마이클 무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궁금증 : 서민들은 왜 참고 있는가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마이클 무어에게 아주 특별한 작품이다.
그는 여러 자리를 통해, 자신의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이 주제를 고민해왔다고 말한다.
1989년 <로저와 나>로 데뷔한 무어는 이번 새 다큐멘터리로 꼭 20주년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상징적 의미에 걸맞은 걸작을 만들어 냈다.
<자본주의>는 이전 어떤 작품보다 날카롭고, 감동적이며, 무엇보다 재미있다.

무어의 메시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둘째, 자본주의는 절대다수를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다.
셋째, 다른 체제는 가능하며, 가능한 서둘러 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 마이클 무어는 <자본주의>에서 '이윤추구' 속에서 황폐해진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익'이 된다면 남의 불행까지 부추기는 존재로 전락했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자본주의>는 주제 면에서 실업, 총기, 전쟁, 의료문제를 다룬 전 작품들을 관통한다.
그것은 소수의 탐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가이다.
무어는 새 작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진다.
다수는 왜 소수의 욕망에 희생되면서도 그대로 참고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위에서 1퍼센트의 소수가 아래로부터 95퍼센트를 더한 것보다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권력은 다수의 이익을 무시한 채 부유층 감세정책과 기업 탈규제처럼 소수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부자들을 돕기 위해 서민들이 푼돈을 모아 낸 세금을 아낌없이 쓴다.  


그러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서민들이 '부자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이다.
이 기이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무어가 내놓은 답은 '욕망의 투사'다.
'너희도 열심히 하면 상위 1%에 낄 수 있어.' 국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믿게 만든다.
신용카드로 미래 소득을 미리 당겨쓰기도 하는데, '곧 부자가 될 사람'이 부자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국가가 유포하는 이 달콤한 착각 속에서, 서민들은 정당히 사회에 돌려야 할 분노를 부당히 자신에게 돌린다.
내가 무능해서 그래.
내가 게을러서 그래.
내가 못나서 그래.
그리하여 서민들은 투표장과 광장에서 찾아야 할 답을 서점의 '자기계발' 섹션과 잠과 생활비를 쪼개 얻은 영어회화 수업, 그리고 더 불행히는 고층건물 난간에서 찾는다.

현실 : 제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영화는 '로마제국 멸망사'로 시작한다.
옛 다큐멘터리 <고대 로마의 삶>의 한 장면이 잡음 섞인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온다.  

"로마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하고 아름다운 제국이었다.
그러나 이 제국도 역사의 풍파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비인간적인 노예제도에 의존한 경제, 심각한 빈부격차 속에서 로마는 쇠퇴해갔다.
정부는 시민들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자극적인 오락과 스포츠를 대중장소에서 열곤 했다.
국가권력은 다시 황제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가장 인간적인 법을 발전시켰던 로마는 이제 더 없이 비인륜적인 사회로 전락해 버렸다.
이 모순이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결합해 로마를 몰락의 구렁 속으로 몰아넣었다."


  
▲ 집에서 쫓겨나는 미국인들이 늘면서 몰수당한 집을 싸게 파는 대행업과 '몰수' 간판업이 성업을 맞고 있다. 이 사태는 금융규제의 완화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색 바랜 로마 다큐멘터리의 장면들이 미국의 현대적 이미지와 교차되어 나타난다.
직업과 집을 잃은 노숙자, '호령하는' 부시 대통령, 그리고 미국 텔레비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력적 스포츠 장면들.    

곧 이어 변기 물을 내리는 '똑똑한'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잠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무어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다.
"후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요?"

노스캐롤라이나 렉싱턴. 창문을 통해 경찰차들이 도착한다.
긴장으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는 여자의 숨소리가 들린다.
"셋, 넷, 다섯, 여섯... 모두 일곱 대야." 카메라를 든 여자가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집 안에 있는 목격자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다.
모두 네 명. 노크를 해도 문을 열지 않자, 경찰들이 문을 부수기 시작한다.
돈이 없어 집을 몰수당한 가족들이었다.

이어서 영화는 40년을 살고 쫓겨난 디트로이트 가족을 보여준다.
'우리는 갈 데도 없다'는 어머니의 호소에 문에 못질을 하던 대행업체 업자가 대꾸한다.
"돈 제대로 내면 안 쫓겨날 것 아니에요." 여자는 '당신도 우리 같은 서민 아니냐'고 설득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 대대로 물려온 일리노이의 농장과 집에서 쫓겨난 가장. 그는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곧 무슨 사태가 벌어질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나에게 해 준 그대로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서민들이 더 이상 양극화를 바라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일리노이의 피오리아. 대를 이어 살던 농장의 부부가 쫓겨나고 있다.
역시 돈을 갚지 못해 집을 몰수당한 가족이다.
'30일 이내에 집을 비우라는 통지를 받았다'고 침울하게 말하는 남자 귀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에게 '집이 팔렸기 때문에 오늘 9시까지 나가달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부인이 울며 말한다. "우린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이에요.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나요?"


왜 이런 일이 : 부자들에게 납치된 예수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는 이유는 융자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금융업계의 요구에 따라 개인주택을 투자수단으로 쓸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악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고율의 이자를 갚지 못해 집을 몰수당하고 있는 것이다.


  
▲ 무어는 20년 전 <로저와 나>에서 실패했던 시도를 다시 감행한다. 지엠 자동차 회장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실패한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반면에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금융업계는 서민들의 한숨 속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
경영실수로 위기에 처한 업체들은 서민들이 낸 세금으로 구제('베일아웃')해 준다.
정부와 언론은 서민들이 길에 나앉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지만, '대기업이 망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망하는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공포를 조장한다.

무어는 부유층을 위한 구제 금융과 세금감면, 그리고 탈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윤추구' 속에서 우리 삶이 어떻게 황폐해졌는지 돌아볼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몰수된 남의 재산을 싸게 사면서 즐거워한다.
이익이 된다면 남의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는 '(경제)동물'로 전락한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볼 만한 부분 중 하나는 '납치된 예수'에 대한 것이다.
어느새 기독교의 예수는 부자들의 수호신으로 전락했다.
이번에는 예수의 기록영화를 빌린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묻는다.
"주를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가 답한다.
"이윤을 극대화해라." 뜨악한 표정의 제자들. 이번엔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까요?" "금융 산업의 규제를 없애라."  

무어의 무엄한 '신성모독'에 분개할 관객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수의 보수 기득권층들도 같은 주장을 한다.
자본주의를 따르는 것이 곧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는 것이다.
부자들의 교회에서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기보다 어렵다'거나 '너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는 가르침은 사라진 지 오래다.    



▲ 미 의회를 찾은 마이클 무어는 한 의원으로부터 '미국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월가 금융권'이라는 탄식을 듣는다. 이제 국가는 다수의 행복을 저버리고 소수의 이익을 보장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왜곡된 논리 : 자본주의를 위해 민주주의를 버려라?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어는 이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지경까지 나아갔다고 말한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의 논설고문인 스티븐 무어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 중에도 못 사는 나라가 많다'는 말로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면 '다른 제도'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음을 비친다.
(무어는 그 사람이 같은 '무어' 성이지만, 자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시티은행의 보고서를 인용하는데, 이것 역시 걸작이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이제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집중 자체가 아니라, 이 집중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첫 번째 위협요소는 대중의 불만이다.
서민들은 국가가 유포하는 헛된 희망을 불신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무어는 '변화'를 모토로 당선된 오바마를 이 근거로 든다.
보수 정치세력과 언론은 오바마를 그 무시무시한 '사회주의'로 색칠했지만, 대중들은 그를 지도자로 골랐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훨씬 열린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누구나 동등하게 갖는 민주적 권리다.
주식의 수만큼 권리를 행사하는 자본가들 눈에 누구나 한 표씩 갖는 투표권만큼 부당한 게 또 있을까.  



▲ 마이클 무어는 새 다큐멘터리에서도 변함없는 재능을 과시한다. 그것은 문제의 기업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그는 은행을 돌며 '세금을 돌려받으러 왔다'고 말하며 돈 자루를 내민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해법 : 승리와 희망, 그리고 싸움

무어의 <자본주의>는 민주적으로 운영하면서도 눈부시게 성장하는 회사 두 곳을 보여준다.
하나는 위스콘신 매디슨의 '이스머스' 엔지니어링 회사다.
로봇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모든 직원이 동등하게 한 표의 결정권을 갖는다.
캘리포니아의 제빵 회사는 회장부터 말단 직공까지 매출이익을 똑같이 나눈다.
이런 회사는 '주인의식'이라는 착각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모두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자본주의 교회'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교회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무어가 인터뷰한 미시건의 두 신부는 '자본주의는 인간을 탐욕으로 타락 시키는 사악한 제도'라고 말한다.
한 주교는 '예수가 오늘 임하신다면 기득권층과 함께 하길 거부하실 것'이라고 단언한다.

시카고의 주교는 파업현장을 찾아 노동자들에게 '제가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고 말하며 그들과 빵을 나눈다.
직장폐쇄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해고된 노동자들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추운겨울, 이들은 직장에 모여 고된 농성을 시작한다.
주민들이 음식을 가져오고, 양심 있는 일부 언론이 부당한 해고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오바마는 이 소식을 듣고 말한다. "나는 그들 편입니다." 농성 노동자들이 환호하며 눈물을 흘린다. 머지않아 회사를 차압한 은행이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다.
파업노동자들이 말한다.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권리, 인권, 그리고 희망의 문제지요."



▲ 영화 마지막에서 무어는 월가를 '범죄현장' 테이프로 감싼 후 '국민들의 심판을 받으라'고 말한다.
그는 '더 이상 이런 나라에서 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떠나지는 않겠다'고 말하며 강한 싸움의 의지를 보인다.  
ⓒ Overture  마이클 무어


'서민정부'의 답은 청와대 서재 (혹은 휴지통)에


영화는 1937년 무어의 고향인 미시건 플린트에서 있었던 파업사건을 보여준다.
지엠 자동차 노동자들은 회사 건물에서 44일간 농성을 벌였다.
사측은 경찰을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구사대'를 고용해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파업현장에 군대를 파병한다.
그러나 군대의 총은 시위대가 아니라 구사대와 경찰을 겨누었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파업노동자를 지키려는 것이었다.
결국 파업은 노동자의 승리로 돌아갔고, 이 사건은 서민들의 생존권을 보호함으로써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두터운 중산층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 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제 2의 권리장전'을 선언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경제적 안정과 독립 없이는 누구도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정된 직업,' '적절한 의식주와 여가 보장,' '의료서비스''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정당한 경쟁' '의료서비스' '양질의 교육권'이다.
그러나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번성하던 중산층은 '레이거노믹스'라는 시장주의를 내세운 레이건 집권 이후 몰락하기 시작했다.




▲ 뉴욕의 시가지에서 구걸하고 있는 노숙자. 부유층 중심의 '레이거노믹스' 이후 중산층은 쇠퇴하고 빈곤층은 급속도로 늘었다.  
ⓒ 강인규  마이클 무어


당사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게 있다.
그것은 오바마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선물한 책의 저자가 루즈벨트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MB노믹스'를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 그 책을 훑어라도 보았길 바란다.
선물로 받은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은 준 사람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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