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들의 파업
프랑스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면 초고속 열차 ‘떼제베(TGV)’에 시민들이 콩나물시루처럼 갇힌 채, 열 몇 시간이나 거북이 운행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숨 막힐 듯 갇혀 있는 시민들이 거의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이 불평을 할라치면 더 많은 시민들이 그 사람을 타이르고 충고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권리부터 지켜져야 시민들의 권리도 지켜진다는 것을 왜 모릅니까?
우리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면, 지금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그 권력과 자본이 언젠가는 우리의 권리까지 빼앗게 되는 것을 왜 모릅니까?
우리가 이미 역사 속에서 그런 일들을 숱하게 겪었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 다 공부하지 않았소? 당신은 우리 역사와 학교 교육에서 도대체 뭘 배웠소?”
그렇게 따지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택시기사 일을 했던 홍세화씨는 프랑스 사회의 그와 같은 정서를 ‘똘레랑스’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최근에 프랑스를 다녀 온 후배의 말에 따르면, 관광 안내 일을 하는 한국 사람에게 ‘똘레랑스’에 대해 물었더니 “똘레랑스, 그거 옛날 얘기입니다.”라고 답하더란다.
그 안내원이 그렇게 답한 이유가 그의 천박한 사회의식 수준으로 프랑스 사회를 바라본 탓일 수도 있겠지만, 신자유주의 광풍이 유럽이라고 비켜 갈 리는 없으니 세계화의 물결 속에 프랑스 사람들의 정서도 차츰 시장경제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정상적인 정서가 한번쯤 사회에 자리 잡았던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마치 산 것과 죽은 것만큼이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프랑스는 시민혁명의 종주국이고 국민들의 철학 수준이 세계에게 가장 높고 진보정당이 여러 차례 집권한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라 특별히 그런 정서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다른 나라 예를 좀 더 찾아보았다.
어떤 이가 라디오방송을 들으며 퇴근하고 있었는데, 여러 나라에 거주하는 통신원들로부터 각 나라의 화제를 전해 듣는 프로그램에서 이탈리아의 통신원이 버스 파업에 관한 소식을 전하더란다.
이탈리아 어느 지방 도시의 버스 회사 노동자들이 3년 동안 500번이나 파업을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의 노동자 파업에 관한 시민들의 연대의식은 귀가 닳도록 들었던 터라, 관광의 나라, 축구의 나라, 좀도둑과 소매치기가 많은 나라 정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가 궁금했는데, 그 통신원의 말을 옮기자면 대략 이러했다는 것이다.
그 도시의 시민들에게 “버스 회사 노동자들이 3년 동안 500번이나 파업을 해서 도시교통이 수시로 마비가 됐는데,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우리나라 언론인들은 질문도 꼭 이런 식으로 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답변이 나오더란다.
“그들도 파업을 할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불편하다고 불만이나 늘어놓으면 나중에 내가 파업할 때 누가 나의 권리를 이해해 주겠습니까?”
이런 답변이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용인 것이다.
그것이 뉴스가 되어 전해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통신원의 낭랑한 목소리가 공중파 주파수를 통해 전해지는 나라라는 생각에 잠겨 그 이는 잠시 차에서 내리는 것도 잊은 채 앉아 있었다고 했다.
최근에 어떤 젊은이의 글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읽었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쓴 그 글의 일부를, 실례를 무릅쓰고,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두개의 여행 가방을 끌며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밀라노 중앙역에 내렸는데! 음... 파업이라더군요.
뭐 좋다.
좀 기다리지 뭐.
오전 9시에 시작된 파업은 오후 3시 30분에 끝날 예정이었습니다.
가방 속에 넣어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겨우 지루함을 달래며 기다렸고 결국 3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이미 메트로 입구에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제 갈 길로 가고픈 서민들...
그러나 늦은 4시 30분에 들려오는 소식은 오늘 하루 종일 모든 대중교통 수단이 운행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다들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하더군요.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
분명히 3시 30분까지라고 하지 않았냐?
남자들의 우렁찬 목소리, 여성들의 고음의 강력한 사운드. 다양한 사람들의 씩~씩~ 거리는 소리들이 그 지역의 배경음악으로 깔리는데, 뭔가 느낌!이 들더군요.
다들 불판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러나 '부글부글 끓는 화'는 아니었습니다.
다들 불만을 토로하고, 그리고, '하하하'거리며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하더군요.
파업이 이런 거구나. 그럼 걸어가지 뭐.
돈이 딸랑 10유로 있던 터라 6유로짜리 큰 밀라노 지도를 사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 30분을 걸었을까?
집 근처에 온 것은 확실한데 지도에도 없는 길을 찾으려니 난감하더군요.
지나가는 할아버지 한 분께 길을 여쭤봤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면서 한 마디 해 주시는데 ‘오늘 파업이라 걸어가나 봐?
짐도 많은데 힘들겠네.
그럼 그들도 쉬어야지.
그들에게도 쉴 권리가 있다구.
오늘 같은 날 천천히 걷기도 하고~ 좋잖아?’
그 날 밤 텔레비젼 뉴스를 열심히 봤습니다.
파업을 주요 꼭지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파업을 했다! 라는 사실이 아니고 미리 예정한 시간만큼만 진행하지 않고, 사전예고도 없이 파업시간을 연장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예상 밖의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음..... 그렇군. 이탈리아의 파업이란 이런 것이군.”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정열적이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반면 조금은 비이성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이탈리아에서도 이 정도가 보통 사람들의 정서인 것이다.
최소한 우리나라와 같이 노동자들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노동조합 활동 - 임금인상투쟁을 마치 사회적 범죄행위처럼 취급하는 정서를 가진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자의 권리를 올바로 이해하는 정서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자리 잡아 본 적 없이, 노동조합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수십 년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한 사회다.
줄잡아 식민지 40년, 분단 60년, 군사독재 30년이라는 비틀리고 왜곡된 근대화 역사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했던 우리 사회가 아주 느린 속도로나마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정상적 이해가 자리 잡히는 방향으로 조금씩 어렵게 나아가고 있던 시기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신입사원 채용 관련 비리가 터지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무산되고, 항운노조의 해묵은 비리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들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국민들이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정서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에서 가장 커다란 비극이다.
결국 국민들 모두가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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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을 보는 시각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