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권리입법 쟁취가 노사관계 로드맵에 맞서는 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기국회가 시작되었고 지난해부터 뜨겁게 맞붙었던 비정규직 관련 입법논의도 재개되었다.
최악의 개악안’이라고 평가받았던 정부 비정규 개악안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고, 노무현 정부는 당선 이후 꾸준히 진행해왔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정규 개악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으로 완성시키려 하기에 어떠한 형태로든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의 노동기본권을 후퇴시킬 법안을 밀어붙일 태세이다.
비정규직 문제, 적극적인 연대의지 부족해
국가인권위 의견서, 단병호 의원실 및 비정규노동법공대위의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듯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개악안이 아니라 실질적인 비정규노동기본권(특수고용노동3권 보장, 원청사용자 인정, 기간제 사용사유 엄격 제한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등 이미 국민 대중들의 비정규직 문제 인식은 상당 수준으로 올라와있으나, 정작 이를 쟁취하기 위해 나서야 할 전투부대인 민주노조운동진영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권리입법 쟁취를 위해 수차례 총파업을 결의해 왔지만 실제 집행된 것은 지난해 11월 26일 하루총파업과 올해 4월 1일 4시간 경고파업 뿐이었고, 산하 연맹으로 내려갈 경우 금속연맹이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비정규노조활동 보장을 내걸고 8월 26일 6시간 정치파업을 벌인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권리입법 쟁취’라는 기치를 걸기는 하였으나 실제 투쟁의 중점은 ‘개악안 유보’에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중집, 중앙위, 대의원대회 등 각급 의결기구에서 논의되는 실제 내용은 “개악안 유보를 내걸어야 실제 정규직을 조직할 수 있다”는 현실론이 우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비단 중앙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올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사내하청노조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스스로 생산을 멈출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지만, 역으로 비정규직의 희생을 감수한 독자파업에 ‘대체인력투입 저지’ 혹은 ‘원청의 집단폭력 저지’ 수준의 연대를 호소하는 비정규노조의 요청을 정규직노조가 외면하는 양상도 자주 확인된다. 연대총파업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불법적인 대체인력 투입을 함께 저지하자는 것인데도 말이다.
비정규직의 ‘권리’ 향상은 전체 노동자의 권리 향상
비정규 권리보장입법을 마치 비정규직의 권리만을 확장하는 것이고 여기에 정규직은 함께 연대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마저 민주노조운동진영에 짙게 깔려있다. 비정규직의 권리(임금이 아니다!)를 향상시키는 투쟁은 결국 정규직노조들의 기본권을 향상시키는 투쟁으로 직결된다. 비근한 예로, ‘원청사용자 인정’을 위한 투쟁은 수많은 부품사업장의 권리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원청 대재벌들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요구를 쟁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또한 각종 공기업의 경우에도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가 ‘원청’에 해당하므로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실질적 권리쟁취에 절실한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마치 ‘최저임금’처럼,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들 삶이 높아지면 그에 상응하여 모든 노동자들 삶이 높아지듯이, 비정규노동자의 권리향상은 전체노동자의 권리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가장 높은 곳의 정규직노동자를 공격하며 권리축소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사관계 로드맵’을 내놓았다면, 민주노조운동은 정반대로 ‘비정규권리입법 쟁취’에 사활을 걸어야만 제대로 승부를 벌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사관계 로드맵에 제대로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비정규권리입법 쟁취투쟁인 것이다.
정부 개악안에서조차 누락된 특수고용직 노조 대표자들이 4일부터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결의하였고, 덤프연대·화물연대·건설운송노조의 10월 중순 총파업을 조직하며 정기국회 권리입법 쟁취에 목을 내놓았다. 울산에서는 현자비정규노조 1기 집행부가 무려 20일 넘게 단식농성을 이어가며 불법파견 철폐, 원청사용자 인정을 위해 싸우고 있고, 용역깡패 투입에 맞서 기아차 비정규 동지들이 목을 내놓고 싸우고 있다. 노동부 산하 4개 비정규노조들이 10월 중순에 공동파업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총파업을 결의할 예정이다.
이미 비정규직노조들의 투쟁으로 비정규권리입법 쟁취투쟁의 전선은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하반기 총파업투쟁의 전선을 활짝 열자. 앞이 캄캄한 현실에 열사들이 줄을 잇고 있지 않는가.
오 민 규 [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 집행위원장 ]
*** 출 처 : 한국노동혁신연구소 [혁신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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