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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4 17:26:45
유재운
http://www.katu.co.kr
이제 며칠있으면 전태일열사 34주기가 돌아옵니다.
(한 고등학생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다른 학생들이 쓴 글들 중에도 매우 좋은 글이 많았지만 본보기로 하나만 올립니다.)



그는 불꽃이 되었다


- 조영래, {전태일 평전}, 돌베개, 1983.

이선아 (광동고등학교 2학년 4반)

질병과 고통, 배고픔 속에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도 못한 채 일해야만 했던 70년대의 노동자들. 현재가 있는 것은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전태일이 있었다.

'전태일?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도대체 누구지?
분신자살을 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의 이름을 알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언제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의 이름이 지난 70년대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낯설었고 지금까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던 일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제대로 그를 알아갔고 생각해본 적 없던 일들을 알아갔다.
그의 이야기는 처참했고 안타까웠고 그리고 아름다웠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는 꿋꿋이 아름다웠다.


1. 그는 배고팠고 힘들었고 공부를 하고 싶었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의 느낌을 한마디로 하자면 '아슬아슬'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아슬아슬한지 아주 조금의 평안도 금방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마치 소설 같았다.
소설에서 이야기의 재미나 전개를 위해서 일부러 첨가해놓은 위기 같았고 이미 정해진 행복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가끔 소설을 읽고 있는 줄로 착각하게 되곤 했다.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굶주려야만 했다.
전에 아파서 3일 정도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적이 있다.
너무 배고팠지만 먹을 수 없었다.
그 때 배고픔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그 3일 후에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전태일의 기한 없는 배고픔을 보면서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것이, 나의 배부름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은 책에서도 나오지만 끝없는 노동과 방황, 그리고 가난으로 못간 학창에의 서러움이었다.
그는 청옥고등공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아버지의 일까지 도와가면서도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을까.
아침마다 세숫대야를 벌겋게 물들일 정도로 힘들었는데.

나는 기초지식이 없어 영어와 수학 과목은 이해하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른 과목은 다 재미있고, 50분 수업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았다.
정말 하루하루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53쪽)

내 생각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생활이 그에게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너무나 즐거운 생활이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이렇게 행복해하고 밝았던 것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그가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1년도 채 안된 그의 행복은 막을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학교를 그만 두고 일을 도우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그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나야 했다.

그의 공부에 대한 열의와 노력을 보면서 나는 또한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게 되면 자신의 편함을 감사할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나는 만약 지금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공부를 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얼마나 편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전태일처럼 다른 힘든 일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공부 그 하나만을 하는 것인데도 항상 힘들다고, 하기 싫다고 투정부리고 짜증을 내었던 나를 생각하면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전태일 평전은 나에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했다.    


2. '평화시장' 누가 이름을 지은거야?

평화시장. 이름만 보면 이 시장은 평화로웠어야 한다.
하지만 이 시장이 평화로웠는가?
아니다.
이 시장은 평화와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이 평화시장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힘든 일을 강요하고 고통스럽게 일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리고 시장 밖의 세상에서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림자 같은 곳이었다.

다른 내일이 없고 희망이 없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만 있을 뿐이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일이 반복이라고 하는데 평화시장 안의 사람들이 그 같은 일의 반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변 환경들은 너무도 열악했다.

나는 평화시장의 사람들이 일하는 환경을 글로 읽으면서 질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질리는 일을 그 때의 평화시장 사람들은 직접 겪고 있었다니 너무 놀라웠다.
하루에 커피 값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여러 병에 걸리면서 14시간 이상씩 일을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그때의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형제를 위해 일하던 나보다 어린 여공들의 현실과 책에서 본 잠 좀 맘껏 자봤으면 좋겠다는 어린 여공의 말은 너무 슬펐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인물현대사'라는 프로를 보았다.
그 곳에서는 일하는 여공들이 나왔는데, 글로 읽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보다도 더 심했다.
그리고 도무지 그런 곳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일해야만 했던 사람들과 전태일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도대체 그 곳이 어떤 대단한 곳이며 그 곳의 기업주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기에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지 화가 났다.  
  

3. 그는 싸웠고, 죽어갔다.

사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국민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는 전태일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벌주의사회를 정말 싫어하지만 그 학벌주의사회 안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부끄럽게도 내 무의식에 이미 그런 학벌주의적인 생각이 박혀 있었나보다.

하지만 곧 무의식적이었던 것이지만 그를 무시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무시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존경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어떤 학벌이 좋은 사람도 따라가지 못할 그의 깊은 생각과 순수한 인간성에 감탄했다.

그는 잘못된 현실이라는 강의 흐름을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렵고 힘들어도 마치 알을 낳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처럼 잘못된 현실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근로 개선이라는 알을 낳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상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238~239쪽)

나는 저 글을 읽으면서 '전태일은 결국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결심을 해버렸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냥 그 흐름대로만 살았다면 그는 아마도 재단사로서 조금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전태일이 하는 일들을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눈을 감지 못하고 함께 아파했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버렸다.
내가 전태일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러한 상황에서 눈을 감고 그저 흘러가기만 했을 텐데. 저런 결심을 하게 만든 평화시장의 기업주들과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사회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불꽃이 되어버린 그는 나를 슬프게 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그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괜한 원망으로 그의 옷에 '설마'하면서 불을 붙인 사람이 미웠다.
'도대체 어떻게 설마라는 생각든거지?
석유를 뒤집어쓰고 왔으면 석유 냄새가 진동을 했을 것이고 석유로 옷이 젖어 있었을 텐데, 분명 그는 전태일이 석유를 뒤집어쓰고 왔다는 사실을 알면서 불을 붙였을 거야'라는 원망의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 친구의 탓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전태일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를 죽인 것은 바로 검은 사회였다.
그 검은 사회가 그의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어도 그는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쯤 아저씨가 되어서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어릴 때부터 자신을 스쳐지나가던 '행복'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손만 조금 데어도 눈물이 날만큼 아픈데, 전태일은 온몸이 불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알리기 위해, 노동자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찾기 위해 일어섰고 불속에서 끝까지 외쳤다.
그의 싸움은 아름다웠지만 너무나도 슬펐다.


4. 2004년 현재.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없어졌는가.

지금은 21세기의 2004년.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하지만 평화시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평화시장은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비정규직은 현재의 평화시장인 것이다.
비정규직만이 아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것처럼 조금은 더 부유해진 우리 사회는 여전히 평화시장을 그림자처럼 끌고 오고 있다.
그들은 힘든 환경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도 많은 불평등에 놓여있다.
기업주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방금 전 텔레비전에서 비정규직인 박일수 씨가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을 보았다.
이 박일수 씨는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기업인 주식회사 인터기업에 입사하여 Co2 용접공으로 일하였었다.
그런데 이 인터기업은 7년 이상 일한 사람 10명을 당사자도 모르게 퇴직시킨 후 그 퇴직금을 사장이 받아서 쓰거나 국민연금 보험료를 체납하기도 하고 각종 수당도 회사가 중간에 가로채고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박일수 씨는 하청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은 '하청 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를 외치며 불속에서 죽어갔다.
안타까운 현재의 일이다.
죽은 박일수 씨의 영정 사진 위로 전태일이 겹쳐보였다.

세상이 변하고 날이 갈수록 발전되는 이 사회 속에서도 전태일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그토록 사랑했던 노동자들은 세상의 음지에서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전태일이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지금도 노동자들의 근로 개선을 위해 많은 이들이 싸우고 있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언제쯤 전태일이 바라던 세상이 올 것인가.
검은 사회는 얼마나 더 또 다른 전태일들을 원하는 것인가.

앞으로의 근로 개선이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이다.
현재 자본을 위한 대한민국 노동법을 진정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법으로 바꾸어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이 불평등 없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는 일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5. 당신은 진정 어머니이십니다.

죽은 삶이 아니라 살아있는 죽음을 선택한 전태일의 뒤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전태일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어머니의 덕분이었고 그녀는 책에서도 나오듯이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란 말이 어울리는 대단한 분이었다.
노동 운동을 하는 아들을 보면서 말리려 했지만 결국은 이해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 후에는 그의 뜻을 계속 이어왔다.

노동 운동을 하면서 고생하는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결국은 숯덩이가 되어버린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뜻을 이어달라는 아들은 보면서, 자식을 먼저 보내버릴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내가 그의 어머니였다면 아마도 모든 의욕을 잃고 쓰러져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죽어버린 아들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뜻을 이어갔다.
그가 죽은 후부터 계속해서 노동자 근로 개선을 위해 아들 대신 꿋꿋이 싸워온 것이다.

그녀는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군부독재에 의해 수많은 억압과 탄압을 받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청계노조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노동교실을 열어 노동자들이 배움을 접할 수 있도록 했고 노동운동의 현장마다 앞장서 함께 싸우고 다쳐가면서도 노동자들을 보호했다.
그리고 모두의 정신적 기둥이 되었다.
전태일이 그냥 한사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람이듯이 그녀도 전태일만의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들의 어머니였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던 '인물현대사'에서 어머니와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이 끌어안고 울던 모습과 아들 앞에서 '너와의 약속을 이제 지켰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들은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하였다.

아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근로기준법을 외우던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후에는 끊임없이 싸웠고 노동자 근로 개선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나는 이제 그녀가 앞으로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태일도 죽는 날까지 그러했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너무나 힘들게만 살아왔다.
이제 나머지는 우리들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려는 정부의 배짱(하종강의 노동과 꿈에서 펌)

유재운
2004/11/04

   직장인을위한 특별금융

담 당 자
200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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